휘낭시에 쿨타임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사실 이전까지의 회고는 하루 이틀이면 금세 나왔는데 이번 회고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 지우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글입니다. 4개월 만의 포스팅이라 제 안의 인문학적 감성이 전사했는지 몰라도 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어떻게 하면 정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회고에서는 간략히 회사 안에서, 회사 밖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사건 위주로 훑어보고 종합적인 소감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배경지식 겸 제 소개를 먼저 하자면 저는 게임 회사 데이터팀에서 웹 프런트 + 백엔드 개발을 하고 있는, 올해로 2년 차가 된 주니어 개발자입니다.
다만 지금은 당당하게 '나는 데이터팀에서 일해요!'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누가 제 소속을 물어봤을 때 말하기가 좀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엔 실제로 데이터와 접점이 있는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주로 사내 서비스를 구축하는 일을 맡았는데 비유를 하자면 케이크가 유명한 빵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실 저는 피자빵 담당인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뭔가 애매하죠.
여하튼 근데 올해는 나름 데이터를 건드리는 업무를 이것저것 맡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전까지 구축 중이었던 사내 서비스에 종합 게임 지표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 검증 방법이나 다양한 그래프 구현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기존에 운영 중인 단일 게임 지표 서비스를 인수인계받으며 프런트+백엔드 운영을 전부 담당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날 것의 게임 데이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용자의 화면 앞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또 회사에서 연말마다 내부적으로 개발 콘퍼런스를 여는데, 이때 어쩌다 보니 제가 우리 실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왜 제가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하튼 뭐든 알아야 발표를 할 수 있는데 당시 저희 팀을 제외하고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다른 팀원분들의 바짓가랑이를 아주 살짝 붙잡고 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또는 어떻게 소개되기를 희망하시는 등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녔고, 그 과정에서 우리 부서, 그러니까 데이터를 다루는 조직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열정을 불살라서인지 20분 전 마셨던 청심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발표는 나름 무난하게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올 한 해는 케이크까지는 아니어도 슈크림 정도는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퇴근하고 나서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근데 뭐가 많아요.
우선 연초에 매시업이라는 IT 연합 동아리를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하고 있게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주로 웹 프런트엔드 개발을 맡다 보니 백엔드는 어떤 식으로 개발하는지가 궁금해져 노드팀으로 들어갔고, 스터디와 더불어 반기에 한 번씩 진행하는 토이 프로젝트에서 누에처럼 열심히 API를 뽑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서버 에러를 만나고 그걸 고치고 다시 500 에러를 만나는 무한궤도에 빠지고 오니 이 땅의 모든 백엔드 개발자에 대한 경외와 함께 역시 내 적성은 프런트엔드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에서 진행한 토이 프로젝트 이외에도 주변 지인들과 함께 2개의 프로젝트를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하나는 일전에 포스팅한 나와 닮은 개발자 찾기 심리 테스트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 미완성인 주식 관련 앱 서비스입니다. 주식 서비스에선 웹뷰를 써 주식 차트를 토스처럼 깔끔하게 그리는 걸 목표로 했고, 또 매 분마다 주가를 업데이트해주어야 했기에 처음으로 실시간 통신을 해봤습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러닝 커브가 낮고 iOS와 Android 둘 다 지원이 가능한 React Native라는 프레임워크를 선택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디버깅이 까다로워서 실제 작업한 코드는 많지 않은데 디버깅하느라 시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쏟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백엔드 개발자분들과 더불어 지구 상의 모든 React Native 개발자분들께 또 한 번 경외를 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평소 교육과 관련해서도 관심이 있었기에 여름 동안엔 설리번 프로젝트라는 단체에 참여해 코딩 교육 봉사도 도전했습니다. 팀을 구성하고 교육생들을 모아 약 8주 동안 본인들이 구성한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저희 팀은 html, css, javaScript 프런트엔드 삼대장과 날씨 API를 이용한 날씨 예보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상황이 될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많았는데 그 작은 경험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추가로 원래는 저 최상단의 제목이 다른 꾸밈없이 흰색으로만 나오게 소개했는데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바로 그림자에 그러데이션까지 넣어 꾸민 친구들을 봤을 땐 개발 업계의 밝은 미래와 함께 제 어두워진 미래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말랑한 머리는 늘 부러움의 대상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반기부터 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했습니다.
갑자기 팔자에 없던 21학번이 되고자 결심한 이유는 이전부터 CS(Computer Science) 지식이 부족한 걸 체감하고 있었고, 또 데이터 과학과 수업도 병행해서 들으면 우리 팀에 도움이 되는 지식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습니다. 다만 이때 제가 잊고 있던 건 당시 이미 동아리와 토이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지요. 가련한 직장인은 이 사실을 망각한 채 5 전공 1 교양을 호기롭게 신청했고, 덕분에 올 하반기에는 좀비처럼 지냈습니다. 언젠가 주변 지인이 저한테 쉬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애기한 적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해명하고 싶네요. 저도 유튜브 파도 타며 멍 때리고 싶었다고...
여하튼 한 학기 동안 다니며 빅데이터나 AWS 클라우드 등 배운 것도 분명히 있지만 온전히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도 컸던 것 같습니다.
동생과 저는 유독 간식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한 번 꽂힌 간식은 물릴 때까지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신도림 근처 카페의 휘낭시에에 빠져 1일 1 휘낭시에를 실천했고, 12월에는 호빵에 꽂혀 매일 단팥호빵을 해치우다 못해 삼립에서 공식 굿즈로 내준 호빵 찌는 머그잔 ‘호찌머그’도 충동구매할 정도지요. 그리고 게임에서 한 스킬을 사용하면 몇 초간 쿨타임이 돌고 나서 재사용할 수 있듯 한 번 불태운 간식은 쿨타임이 끝날 때까지 우선순위 뒤로 밀려납니다. 그래서 1월인 지금 호찌머그는 선반에 고이 잠들어 있지요.
비슷한 맥락으로 올해는 대외활동이란 간식을 물릴 때까지 먹은 것 같아요. 맛은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만 개인 시간, 특히 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달린 건 확실히 건강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개인 시간도 충분히 가지며 내면의 나를 가꾸고 사람들과 나 사이의 밸런스를 조절해보려고 합니다. 동물의 숲에서 저를 애타게 그리워했던 스미모랑도 눈물의 재회를 하고, 책도 읽어서 인문학적인 나도 다시 살리고요.
특히 근 4개월 동안 방치했던 블로그도 다시 활성화해서 적어도 이전처럼 월 1회의 규칙은 지키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골고루 먹고 대외활동 쿨타임도 다 돌아 2022년에는 정신과 신체 모두 균형 잡힌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단짠의 경지 ‘말돈 소금 휘낭시에’ 맛집 카페를 추천하며 올해 회고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