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념이 Nov 16. 2018

터키의 절경보다 할아버지의 인심


터키는 참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서구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로서는 영화나 뉴스 속에서 악역(惡役)으로 나오는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권이 하나의 매력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6.25의 참전을 기억하는 할아버지 세대부터 2002년 월드컵의 모습을 기억하는 세대들까지 아무튼 우리와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너무나도 친절한 사람들과 푸르른 지중해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휴양지로의 모습까지 정말 100가지의 모습을 가진 곳이다.


아야 소피아


터키 이스탄불에서 많은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10시간 정도 야간 버스를 타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탄 일행들과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다음 날 있을 투어를 예약하고 슬슬 걸어서 주변의 볼거리들을 보며 돌아다녔다.


동 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강대했던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에 이어 향했던 곳이기에 카파도키아는 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그냥 남들이 다 가는 곳이기에 가 보는 그런 곳으로 생각했다.


눈 내린 카파도키아


그러나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서 우리는 자연에 압도되었다.


"어떠한 인간의 위대한 피조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하였던가.

정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 말을 꺼낼 것도 없이 이 말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 지역은 과거 화산활동을 하던 에르지에르 산과 길류 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과 화산재로 수만 년 전에 1200m나 덮이게 됐다.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비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이뤄진 침식으로 달 표면과 비슷한 괴상한 모양의 지형이 형성됐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외계의 행성 장면을 찍을 때 나온 듯한 멋진 대 걸작품이 된 것이다. 기기묘묘한 지형 덕분에 이곳은 지구이면서 지구가 아닌 듯이 느껴지는 놀라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놀란 것은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지형만이 아니었다. 어디인지도 자세히 모른 채 로즈 벨리라는 곳으로 터벅터벅 찾아 나설 때였다. 마침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케밥 레스토랑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한국 누나(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번개 누나’라는 별명을 얻음)를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는 곳에서 다시 만나 하루 동안 동행하기로 했다.


카파도키아의 풍경

그런데 로즈 벨리가 도저히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지나가는 차를 세워 길을 물어보았지만 시골 할아버지들과는 말 그대로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이들 할아버지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시고 우리 역시 터키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세상에서 가장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번개 누나’는 대체 어떻게 말을 했는지 이미 그 할아버지들의 트럭에 타고 있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터키 할아버지는 우리를 로즈 벨리까지 데려다주었고 우리가 사진을 찍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동안 쭉 기다리고 계셨다. 터키 사람들이라고는 최대의 도시이면서 관광지인지라 닳을 대로 닳은 이스탄불 사람들만 만나본지라 나는 혹시 터키 할아버지가 돈이라도 얼마 달라는 게 아닌가 하며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 꽤 지난 듯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되는 데다 우리가 한참을 걸어 돌아갈 길도 걱정이 돼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얼떨결에 그 할아버지가 일하는 석탄 가게 사무실까지 따라가 밥을 얻어먹고 설탕을 듬뿍 넣어 맛이 단 터키식 차 ‘짜이’도 한잔 대접받았다. 사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던, 까치밥까지 남겨둔다는 우리네의 그 인심이 아닌가!


그런데 그 할아버지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기저기서 추운데 짜이 한 잔 더 마시고 가라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순간 이 마을에 대단한 손님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감동적이었던 터키의 인심


터키 여행을 다녀온 지 몇년이 지난 지금, 그 아름다웠던 블루 모스크도 카파도키아에서  보았던 웅장한 자연의 풍경도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는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듯하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서 생각했던 그 문구에 한 문장을 더 보태야 할 듯하다.


“어떠한 인간의 위대한 피조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연도 사람의 따뜻한 마음 앞에선 초라해질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촌스러운 여행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