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참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서구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로서는 영화나 뉴스 속에서 악역(惡役)으로 나오는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권이 하나의 매력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6.25의 참전을 기억하는 할아버지 세대부터 2002년 월드컵의 모습을 기억하는 세대들까지 아무튼 우리와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너무나도 친절한 사람들과 푸르른 지중해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휴양지로의 모습까지 정말 100가지의 모습을 가진 곳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많은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10시간 정도 야간 버스를 타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탄 일행들과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다음 날 있을 투어를 예약하고 슬슬 걸어서 주변의 볼거리들을 보며 돌아다녔다.
동 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강대했던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에 이어 향했던 곳이기에 카파도키아는 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그냥 남들이 다 가는 곳이기에 가 보는 그런 곳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서 우리는 자연에 압도되었다.
"어떠한 인간의 위대한 피조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하였던가.
정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 말을 꺼낼 것도 없이 이 말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 지역은 과거 화산활동을 하던 에르지에르 산과 길류 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과 화산재로 수만 년 전에 1200m나 덮이게 됐다.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비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이뤄진 침식으로 달 표면과 비슷한 괴상한 모양의 지형이 형성됐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외계의 행성 장면을 찍을 때 나온 듯한 멋진 대 걸작품이 된 것이다. 기기묘묘한 지형 덕분에 이곳은 지구이면서 지구가 아닌 듯이 느껴지는 놀라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놀란 것은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지형만이 아니었다. 어디인지도 자세히 모른 채 로즈 벨리라는 곳으로 터벅터벅 찾아 나설 때였다. 마침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케밥 레스토랑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한국 누나(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번개 누나’라는 별명을 얻음)를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는 곳에서 다시 만나 하루 동안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로즈 벨리가 도저히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지나가는 차를 세워 길을 물어보았지만 시골 할아버지들과는 말 그대로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이들 할아버지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시고 우리 역시 터키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세상에서 가장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번개 누나’는 대체 어떻게 말을 했는지 이미 그 할아버지들의 트럭에 타고 있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터키 할아버지는 우리를 로즈 벨리까지 데려다주었고 우리가 사진을 찍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동안 쭉 기다리고 계셨다. 터키 사람들이라고는 최대의 도시이면서 관광지인지라 닳을 대로 닳은 이스탄불 사람들만 만나본지라 나는 혹시 터키 할아버지가 돈이라도 얼마 달라는 게 아닌가 하며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 꽤 지난 듯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되는 데다 우리가 한참을 걸어 돌아갈 길도 걱정이 돼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얼떨결에 그 할아버지가 일하는 석탄 가게 사무실까지 따라가 밥을 얻어먹고 설탕을 듬뿍 넣어 맛이 단 터키식 차 ‘짜이’도 한잔 대접받았다. 사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던, 까치밥까지 남겨둔다는 우리네의 그 인심이 아닌가!
그런데 그 할아버지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기저기서 추운데 짜이 한 잔 더 마시고 가라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순간 이 마을에 대단한 손님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지 몇년이 지난 지금, 그 아름다웠던 블루 모스크도 카파도키아에서 보았던 웅장한 자연의 풍경도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는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듯하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서 생각했던 그 문구에 한 문장을 더 보태야 할 듯하다.
“어떠한 인간의 위대한 피조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연도 사람의 따뜻한 마음 앞에선 초라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