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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하 Iam May 31. 2024

여행 중에는 '원래'라는 건 없다.

여행 중 나에 대한 발견


안 하던 행동을 하네

"저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왜 여행 와서는 조식을 이렇게 많이 먹는지 모르겠어요"

"쌤~ 여행 오면 원래라는 건 없어요. 말도 하지 마"


나는 어릴 적부터 아침을 안 먹다 보니 국내여행할 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도 안 먹는다. 해외여행에서는 숙박을 예약할 때 조식을 모두 제외한다. 그리고 근처에서 간단하게 사 먹곤 한다. 이번 남프랑스 여행은 패키지라서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1인당 5만 원~6만 원 한다는데 어떻게 안 먹을 수 있겠는가. 조식 가격도 가격이지만 유럽의 빵과 시리얼을 좋아하는 나는 차마 안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1시간씩 조식을 먹었다. 나는 특히나 바게트에 버터와 잼을 발라먹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바게트 1조각이 아니라 1개를 다 먹고, 요거트에 시리얼과 과일을 넣어서 먹었다. 프랑스 우유는 어찌나 맛있던지 우유도 한 컵, 커피도 한 잔은 필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평소 아침을 안 먹을 뿐만 아니라 빵도 잘 먹지 않는다. 한국에서 바게트는 1년에 1번 정도 사 먹는다. 가끔 프랑스 바게트가 생각날 때 정도? 과일도 잘 먹지 않고 시리얼은 거의 먹지 않는다.


남프랑스 여행을 하는 중에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서 일출을 봤다. 이 또한 나에겐 이례적인 일이다. 평소에는 아침잠이 많아서 출근도 겨우겨우 하니까. 일주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공기를 맡고,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다니 내 주변 사람들이 알면 놀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에서만 저절로 새벽에 눈이 뜨였다. 다른 해외여행에서는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났으니까.


음식을 먹을 때도 행동이 달라졌다. 나는 술을 못 마셔서 평상시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약속도 2-3달에 한두 번 일정도로 손에 꼽는다. 그런데 여행만 오면 꼭 식사할 때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을 곁들인다. 그리고 안 먹어본 음식이라고 빼지도 않고 가리지도 않는다. 평소엔 새로운 음식은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액상 프로방스의 숙소가 지중해를 떠올리는 숙소였다. 계속 날이 추웠는데 딱 그날부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정을 빨리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서 수영하기로 했다. 뜨거운 햇살에 야외 수영장 물은 따뜻하진 않았지만 차갑지 않은 정도였다.


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데 1년에 1번도 바다에 가지 않는다. 호텔에 놀러 가도 수영장에 가지 않는다. 바다에서 노는 방법도,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법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몸의 피부가 좋지 않아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점점 가지 않게 된 것도 있다. 뭐, 살이 쪄서 몸매도 그리 좋지 않고. 그런데 이번에 수영장에 들어가자고 하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알겠다'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내가 알겠다고 대답하다니.


실제로 나는 피부, 몸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다. 사진도 많이 찍고, 배영도하고, 수영 시합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내 삶에서 이렇게 신경 쓰지 않고 놀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원래'라는 게 무엇일까.

'원래 나 아침 안 먹어'

'원래 나 이런 거 안 좋아해'

'원래 나 아침잠이 많아'

'원래 나 수영 안 해'

'원래 나 물놀이 안 해'


여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툭툭 나왔던 말들이다. 대체 '원래'라는 게 무엇이길래 나는 계속 '원래의 나'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들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신기해서 한 말이었다.


지금 내가 자주 하는 행동들을 보면 그중에 '원래'라는 것이 있을까? 

현재 내가 좋아하는 독서도, 글쓰기도, 배움도 '원래'에 속하지 않는 행위들이다. 내 삶에 없던 것들이 지금은 내 삶에 존재한다. 반면, 예전에 자주 했던 행동이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행위들도 있다. 드라마 몰아보기, 러닝, 아몬드 라떼, 탄산음료와 같은 것들. 그렇다면 '원래'라고 말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가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고 나에게 존재했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면,

그 단어 안에 나의 행동을 묶어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겠네.

그 단어를 핑계로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원래 아침잠이 많으니까 여행 와서도 늦잠을 자고, 원래 아침을 안 먹으니까 조식도 먹지 않고, 원래 수영장에 안 가니까 놀지 않았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놓쳤겠지. 해가 떠오를 때의 새벽 기운도 못 느꼈을 것이고, 여유롭게 먹는 아침 1시간이 주는 즐거움도 몰랐을 것이다. 툭 튀어나온 뱃살과 피부 신경 쓰느라 베드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원래의 나'를 내려놓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대신해보지 않았던 행동들을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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