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패키지 일정이 끝나고 나는 파리로 이동하여 더 머물기로 했다. 파리에서 11구 호텔에서 2박 3일을 묵고, 이동해서 16구에서 2박 3일을 묵었다. 처음 묵었던 파리 숙소는 11구 리옹역 근처의 호텔이었다.
파리 호텔에 저녁 6시쯤 도착했다. 호텔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 갖춰진 방이었다. 책상이 있고, 큰 창문이 있어서 창문으로 파리의 건물이 보이는 방이었다. 방을 구경하고 짐을 풀고 정리하다 보니 저녁 7시 30분. 해가 9시 넘어서 질텐데 뭐 할까.
파리에서 머무는 5일은 혼자 여행한다. 남프랑스를 함께 여행했던 사촌동생은 남프랑스 일정이 끝나고 돌아갔다. 해외여행으로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오기 전부터 긴장했다. 혼자서도 괜찮을까?
긴장했지만 이상하게도 여느 여행과 달리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않고 왔다. 원래 어느 정도는 계획을 세우고 오는 편인데 이번엔 몽마르트르 언덕 가는 것과 피크닉 말고는 없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단 호텔을 나서서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좀 구경하다가 지치면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에펠탑 보러 갈 생각이었다.
혼자 해외에서 걸은 적이 처음이다 보니 긴장했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도 긴장했고, 사람이 지나가도 긴장했다. 잔뜩 긴장한 체로 구글지도를 보며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센강이 나온다.
센강을 따라 쭉 걸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긴장도 좀 풀렸다. 나무도 구경하고, 러닝 하는 사람도 보고, 건물도 볼 여유가 생겼다. 여기 파리구나.
걷다 보니 어디선가 노래가 들린다. 무슨 음악이지? 어디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지? 음악을 찾아서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찾았다. 센강 맞은편에서 들려온 것이다. 맞은편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동그랗게 파인 구역이 있었는데 3군데에서 춤추고 있었다.
작년 프랑스여행할 때가 생각났다. 같이 놀러 온 친구와 파리 바토무슈를 탔다. 바토무슈를 타면 파리 시내를 한 번에 쭉 볼 수 있다. 에펠탑도 보고, 루브르 박물관도 보고,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고, 센강 주변에 앉아서 술 마시는 사람들도 보고, 그러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춤추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스윙댄스를 추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토무슈에서 흥분했다.
"와, 저기 어디야?? 무슨 춤이지?"
"살사인가? 탱고인가? 스윙인가? 뭐지?"
"하나는 살사고, 하나는 탱고 같아, 다른 하나는 스윙인가?"
"나 유튜브에서 봤는데~ 센강 근처에서 스윙 추더라고. 와 대박이다. 저기 어떻게 참여하는 거지.."
파리에서 돌아온 후 유튜브에 검색했더니 센강에서 추는 스윙댄스가 나왔다. 우리가 본 센강의 동그란 구역이 아니라 맞은편 넓은 공간에서 추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다음에 파리 가면 나도 꼭 센강에서 스윙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파리에 오게 되면서 장소나 시간을 알아봤으나 정보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나는 흥분했다. 저길 어떻게 가야 하지?
주변을 돌아보며 다리를 먼저 찾았다. 으악! 내가 서있는 곳은 다리와 다리 사이 딱 중간이었다. 왼쪽 다리로 돌아가서 가나, 오른쪽 다리로 돌아서 가나 똑같았다. 갑자기 후회된다. 아까 다리가 보였을 때 건너지 말걸... 건너지 않았으면 지금 바로 춤추는 곳이었을 텐데.
나는 다리를 건너서 춤추는 곳으로 가기 위해 뛰었다. 혹시나 소셜이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걷고 뛰고 반복했는데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다.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음악이 크게 들린다. 와, 여기였구나. 우리가 작년에 바토무튜 봤던 곳이. 두근두근 설렜다.
첫 번째 음악이 들리는 공간으로 갔다. 음악이 스윙인 것 같은데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이 아직 모이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4~6명 밖에 없다.
지나쳐서 두 번째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갔다. 여긴 사람이 많다. 둥그렇게 돌계단 3단으로 되어있다. 돌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있고 3칸 아래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있다. 여긴 살사다. 살사를 추는 사람도 많고,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음 세 번째 음악이 들리는 곳은 탱고였다. 탱고도 사람이 꽤 많다.
스윙댄스는 없었다. 어디로 가지? 나에겐 살사보단 탱고가 그나마 비벼볼 만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탱고 스텝을 전혀 모르다 보니 춤추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혹시나 조금은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탱고를 추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이고
춤을 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도 보인다.
자주 보는 사이인지 볼키스를 나누며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뒤로 센강이 보이고 센강 위로 바토무슈가 지나간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속에 내가 있다.
가만히 추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탱고를 배우고 오는 건데 아쉬운 마음과 함께.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길 바랐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눈을 반짝이며 그런 사람을 찾고 있던 내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탱고 추고 싶니?"
"네, 탱고 배우고 싶어요. 가르쳐줄 수 있어요?"
"물론"
할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데려갔다. 홀딩을 하고 스텝을 알려줬다. 사실 스텝을 알려주셨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영어를 못해서 뭐라고 하셨는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눈치껏 스텝을 밟았다.
스윙댄스를 10년 이상 췄으니 리딩을 받는 건 잘하니까. 속성으로 3곡을 연달아추며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내게 탱고를 알려줬다.
"Slow- Slow- Feel the music"
리딩을 하는 할아버지보다 섣부르게 움직일 때가 많았다. 탱고는 스윙보다 더 리딩을 받고 움직인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 아! 또 빨랐다.
"Listen, Listen to the music"
음악을 듣지 못하고 스텝 밟기 바쁜 내게 할아버지는 여러 번 음악을 들으라고 말을 했다. 탱고 스텝을 밟느라 음악 듣는 걸 잊어버렸다. '음악을 듣어야지, 스텝을 잘 밟으려는 마음은 내려놓자' 생각하고 할아버지와 음악에 맞춰 탱고를 췄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음악의 흐름대로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와, 이 할아버지 진짜 잘 추는 분이다. 나를 탱고를 추게 만들다니. 나의 스텝을 앞으로 밟을지, 뒤로 밟을지, 옆으로 갈지 모두 만들어내셨다.
내가 춤을 추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는데 음악과 춤을 추는 우리가 하나가 될 때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이 공간에 딱 우리만 있는 순간. 할아버지와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출 때 그 순간을 느꼈다. 너무 좋다.
몇 곡을 연달아추고 헤어졌다. 한 번 배우고 다른 사람들이 탱고를 추는 걸 보니 달리 보인다. 사실 본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더 자세히 봤다.
그런 나에게 춤추자고, 한 외국인이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와 탱고를 잘 췄으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 YES!
10초도 되지 않아 스텝이 모두 꼬였다. 나는 남자의 발을 자꾸 밟았다.
"sorry............. "
"ok, ok- You're doing great"
친절하게도 내게 자꾸 잘한다고 칭찬해 줬다. 기본 스텝도 다시 알려주고 춤을 췄으나 망했다. 그의 리딩을 나는 전혀 받지 못했다. 여기서 더 알 수 있었다. 아까 할아버지가 고수였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다.
"Life is beautiful" (삶은 아름다워)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춤을 추면서 그 말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러네, 삶은 아름다운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탱고를 추는 그 순간이 낭만처럼 느껴졌다. 아니 지금 파리에 있는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말하나 보다.
센강에서 음악에 탱고라니. 탱고를 추는 사람들도, 탱고 추는 사람들 너머로 탱고 음악을 들으며 센강을 바라보는 것도, 해가 지는 하늘과 파리의 건물도 낭만적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댄서들에게 음악을 틀어주며 앉아있는 할아버지도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