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락 May 25. 2021

소소한 에세이

만일 1년 후의 사형선고를 받으면

만일 내가 정확히 1년 뒤에 죽게 된다면 지금 당장 회사에 사표를 던질 것이다. 퇴직금을 정산 받아 내 이름으로 회수 가능한 돈을 모두 확보하고 보험 증서 등은 재점검하여 남편에게 넘길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남은 1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것 이다. 나는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큰 불효이므로 분기에 한번씩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여 멋진 추억을 남길 것이다.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좋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드릴 것이다. 평안한 노후생활을 위해 통장에 돈도 넉넉하게 넣어드릴 것이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를 위해 앞으로 크면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후원금도 만들어 줄 것이다. 아끼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파티도 마련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혹은 그룹으로 만나 그간의 인연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남편과 함께한 시간이 이제 겨우 10년 조금 넘었는데 먼저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고 억울하다. 남편이 얼마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근사한 최신형 전기차를 먼저 계약해야겠다. 내가 떠나더라도 초라해 지지 않도록 근사한 차와 향기 좋은 향수, 멋진 옷들을 미리 사줄 것이다. 새 차를 타고 한 달에 한번씩 남편과 근사한 여행을 할 것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어려우니 국내 방방곳곳 안가 본 곳, 둘만의 좋은 추억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닐 것이다. 2인 플레이를 하더라도 자주 남편과 골프 라운딩을 나갈 것이다. 내가 죽은 뒤 3년 정도는 내 빈자리를 그리워하다가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음이 맞는 좋은 여자를 만나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을 하나씩 처분해 나갈 것이다. 종국에는 내 흔적이 이 세상에 남지 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 소원이 지적재산권을 하나 갖는 것이었으니 죽기 전에 책은 하나 남겨야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물건도 모두 버릴 것이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좋은 구절들만 한번씩 다시 읽어 보고 모두 내다 버릴 것이다. 남편 물건 보다 내 물건이 훨씬 많으니 내 짐이 모두 사라진다면 집안이 아주 휑해질 것이다. 앞으로 남편이 누워서 편하게 TV를 볼 수 있도록 안락한 소파를 사서 집안을 채워줘야겠다. 그가 먹을 영양제도 넉넉하게 미리 주문할 것이다.


가을에 근사하게 프로필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그건 취소해야겠다. 대신 내 장례식에 사용될 사진이나 정성 들여 하나 찍어 남겨야겠다. 계획한 것을 모두 하려면 1년이 꽤 바쁠 것 같다. 남은 1년 동안은 모두 실천할 수 있도록 아프지 않게 지냈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