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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Jun 21. 2021

귀한 며느리

고부 갈등

드라마의 힘은 무섭다. 결혼하면 무조건 시집살이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가까이 엄마를 봐도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엄마를 비롯한 다른 며느리들을 많이 힘들게 했는지 돌아가신 이후에도 좋은 소리를 못 들으셨다. 


이렇게 여기 저기서 보고 들은 시집살이에 대한 공포는 내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혼 이후 시댁을 가면 왠지 조심스러웠다. 다른 곳에서 만난 어른이었다면 더 싹싹하고 편하게 대했을 텐데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었다. 혹시나 말 실수하면 책이 잡힐까 두려웠고, 적군에 인질로 잡혀온 사람 마냥 편하지 않았다. 집안 살림, 요리 뭐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기에 혼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임신 중이라서, 또 몇 년간은 어린 딸을 보라고, 이제는 아이도 좀 커서 시킬 법도 한데 전혀 안 시키셨다. 너무 안 시키니 오히려 미안해서 나서 보기도 했다. 요리는 잘 못해도 설거지는 잘 할 수 있으니 하겠다고 해도 애써 막는다. 아직까지는 내가 할 수 있으니 편히 쉬라고 한다.


“친정에 온 것처럼 편하게 쉬어!”


그러다 보니 며느리들이 느낀다는 명절 증후군도 없었다. 명절에 가면 시아버지와 아웅다웅 하시면서 전과 튀김을 부치고 계셨다. 나도 거들 수 있는데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명절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이야 내가 만나서 결혼까지 결심한 거지만 다른 가족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냥 식구가 되었다. 서로 어색하고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일이 있었고 가족 간의 갈등도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섭섭한 일도 없지 않았다. 한 번은 용기내서 내가 섭섭한 것을 말씀드렸다. 감히 시어머니에게 이런 걸 말씀드려도 되나 많이 망설였지만 다행히 다 받아 주셨다. 이후에도 뭔가 아니다 싶은 건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어머니가 본인은 어른이고, 시어머니라고 귀를 닫으셨다면 절대로 관계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셨고 있는 그대로의 며느리를 예뻐해주셨다. 


언젠가 남편이 농담처럼 얘기했다. 내가 집안 일을 잘 못 하니까 시댁에서도 안 시킨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너무 태연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귀해서 그런거야.. 귀한 며느리니까 안 시키는거라고.”


남편은 너무 기가 찼는지 웃고 말았다. 이후 시댁에도 이 얘기가 전해졌고, 시댁에서도 귀한 며느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며느리로서 내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며느리가 이렇게 느낀다는 게 시댁 어르신 두 분도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아들 낳아서 아무 소용없다고, 남편은 친부모님께는 오히려 무심하다. 딸만큼은 아니겠지만 귀한 며느리인 내가 좀 더 살뜰하게 챙겨드려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시부모님 모시고 맛집 나들이나 가야지! 


“항상 딸처럼 귀하게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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