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깐깐하게 고르는 것
나는 악필이다. 또박또박 반듯하게 예쁜 손글씨를 쓰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손이 따라주질 않는다. 글씨도 못쓰면서 종이와 펜의 궁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이의 재질을 따지고 펜 끝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민감하다. 특히 펜에 더욱 민감한 것 같다. 굵게 쓰이는 것보다 약간은 얇은 것이 좋다. 한때 만년필이 너무 쓰고 싶어서 라미 펜에 각인까지 해서 써보기도 했는데 종이와 합이 맞지 않으면 자꾸 찢기고 굵기 조절도 안돼서 포기했다.
그러던 중 운명 같은 펜을 만나 약 5년째 쓰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 출장길에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공항 면세점에서 산 일본산 펜이다. 두 가지 색 볼펜과 샤프를 사용할 수 있는 멀티펜인데 펜을 잡는 촉감이 매끈하지만 미끄러지지 않고 펜 통 색도 예쁘다. 특히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져 나갈 때의 부드러움이 너무 매력적이다. 이 펜이 너무 좋아 어딜 가든지 들고 다녔고, 주위 사람들에게 제발 한 번만 써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손끝에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인지 샤프 통이 휘어서 샤프심이 뚝뚝 끊어져 지금은 볼펜만 사용하고 있다. 리필심으로 교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서 처음 것과 같은 펜으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여러 리필심을 테스트해본 결과 그나마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 UNI(유니)에서 나오는 JETSTREAM SXR 200-0.5 리필심이었다. 검은색과 파란색 리필심을 한 번에 몇 개씩 구매해서 쟁여놓고 쓰고 있는데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가끔 펜을 떨어뜨려 볼이 나가기라도 하면 너무 속상하지만 재고가 있으니 바로 교체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악필이지만 필기구는 깐깐하게 따져서 고르는 나는 언젠가 우하한 필체를 완성하겠다는 희망을 안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