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잘해야 하나요?
내가 평균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을 받는 게 필수적이고, 서울 상위권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대기업으로의 취업은 당연하며, 결혼을 한다면 적어도 24평의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토록 당연했던 (하지만 입사하기까지가 매우 힘겨웠다는 것부터 모순. 하하.) 대기업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해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더더욱 별 것 없었다. 모든 일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돌아가진 않고, 능력을 키우고 성취감을 느끼며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니와, 평생을 담보하는 직장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회사 생활의 중요한 장점은 안정적인 소득이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안 하는 소득이 뒷받침되니, 그동안 굳건히 믿었던 평균 밖의 세상을 찔끔찔끔 훔쳐볼 수 있었다. (일단 원하는 삶에 발을 들여놓고 여유가 생겨야 더 넓은 세상도 느낄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 세상엔 내가 생각하는 정답으로 살지 않고 가지각색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껏 뭐든 정해진 답만 잘 맞추려는 모범생 마인드로 살아온 나는 어쩌면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소질이 없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해진 평균의 삶만 따라 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을 뿐. 이런 사람들은 선택의 폭도 아주 좁다 그래서 대기업에 취업을 못하면, 퇴사를 하면, 결혼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아간다. 대안이 없는 우물 안에서만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이제 잘 못해도 되니까 뭐라도 해보는 경험들이 정말 소중하다. 브런치만 해도 세상의 모든 글 잘 쓰는 능력자들을 떠올리면 어쩐지 자신이 없어져 계정을 만들고도 한참을 글을 쓰지 못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만히 있었던 시간이 아깝다. 하나라도 더 쓸 걸. 처음부터 작가인 사람이 어딨겠어! 나는 손재주가 정말 없는 똥손으로 유명한데 요즘엔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취미가 생겼다. 아니, 좀 못 그리면 어때? 내가 그림 그려서 돈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의 나라면 화가가 될 실력도 아닌데 그림 그려서 뭐하냐고 했을 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렇게 이것저것 재밌어서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애착이 생기고, 노력하게 되고, 결국 재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다가 그 평균적인 테두리에 영영 갇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결과에 대한 높은 기대는 저리 치우고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잘 못해도 그냥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