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고 짭짤한 매력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둘 끄적이기로 했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서 그치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면 그 대상에 한층 더 애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지금껏 내가 딱히 덕질하는 대상이 없는 이유는 어쩌면 무언가에 대한 사랑을 동네방네 소문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난제와 같은 극악의 난이도를 표방하는 질문일지 모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나만 선택하는 건 정말 어려우니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코 팝콘이다. 팝콘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은, 팝콘에 대한 내 애정은 조금 유별나다
기본적으로 옥수수가 들어가는 음식을 대부분 좋아한다. 그래서 콘샐러드나 콘치즈도 물론 좋아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팝콘 사랑에 견줄 순 없다. 나는 영화관의 오리지널 팝콘만 좋아한다. (다른 데서 산 팝콘은 아무리 맛있어도 영화관 팝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캐러멜이나 치즈가 섞인 팝콘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오리지널 짭짤하고 고소한 버터 팝콘. 영화관에 들어간 순간 흘러 나오는 엄청난 고소한 냄새가 마약처럼 황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10번 가면 10번 팝콘을 먹었다. 대학생 때 썸타던 누군가와 데이트하러 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영화 보는 중에 내가 옆 사람도 신경쓰지 않고 팝콘을 너무 와구와구 먹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나를 보며 이 여자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러는지 걱정했다고 나중에 밝혔었다. (하하) 나는 혼자 영화도 곧잘 보는데, 혼자여도 무조건 팝콘을 먹는다. 혼영을 할 땐 오히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맘대로 팝콘을 시킬 수 있어서 더 좋고 큰 팝콘 한통을 온전히 다 먹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팝콘을 너무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은, 영화를 보지 않는데 팝콘을 사러 영화관을 찾을 때마다였다. 보통은 영화를 보는 김에 고소한 버터 냄새에 유혹되어 팝콘을 시키겠지만, 나는 목적이 팝콘이었다. 팝콘을 사러 영화관에 들러서 팝콘만 사고 빠져나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영화관은 영화를 보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팝콘 상점에 가까웠다.
영화관에서 팝콘만 사서 나와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팝콘을 시키면서 뚜껑을 씌워서 달라고 하면 플라스틱 덮개를 덮고 영화관 봉투에 담아 줬었다. 그러면 팝콘을 사서 봉투에 숨겨 집으로 돌아가기 편했었다. 그러다 환경 문제로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뚜껑 제공이 사라졌다. 환경 보호에는 동참하는 마음이지만 참 아쉬웠다. 팝콘을 테이크 아웃해서 그대로 들고 집까지 가는 길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받기 때문에.. 그래서 에코백을 가져가서 팝콘을 담고 잘 여며서 집으로 돌아오는 첩보 작전을 하기도 했었다.
코로나 19로 영화 보러 영화관을 가지 못한지도 너무도 오래되었고, 집 근처 극장은 아예 일시 휴점 상태라서 요즘은 팝콘 테이크 아웃하러조차 영화관을 들르지 못했다. 얼른 내 사랑 팝콘 상점이 다시 열어서 따뜻하고 고소한 오리지널 영화관 팝콘을 먹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