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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09. 2024

천과 인간의 형상을 엮는 작가 설혜린의 세계

 

 

천과 인간의 형상을 엮는 작가, 설혜린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을 염색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 설혜린이라고 합니다. 염색된 천을 활용하여 평면 작품, 설치 작품, 영상 작품까지 다양한 분야로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작업 초기에는 화학 염료를 활용하여 염색을 진행했다가, 가정을 꾸린 후 인체에 무해한 천연 염료에 관심을 두게 되며 최근에는 쪽이라는 식물을 직접 텃밭에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직접 기른 식물들로 천연 염료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천'을 활용하는 작가님을 뵙게 되어 너무 반가워요. 처음 아트워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예술 분야를 좋아했고, 지금도 뮤지컬 등을 보러 다니며 다방면으로 예술을 향유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즐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림을 좋아해서 미대에 들어갔지만, 미대에 들어가서 유화 작업을 접하고 나니 저와는 너무 결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물감이 묻고, 찐득한 느낌이 싫었죠. 입시 미술을 할 때는 수채화를 위주로 작업을 진행했다 보니 투명한 느낌을 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른 재료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니 저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유화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분야의 예술 활동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강의를 듣게 되었어요. 유리공예, 조소, 도자기, 패션 등 정말 다양하게 강의를 듣고 접해본 것 같아요. 하하. 그런데 그중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의 기초 수업으로 배우게 된 것이 바로 염색 수업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천을 염색해 보게 되었죠.


그런데, 정말 못했어요. 하하. 쉽지가 않더라고요. 묶어서 탈색하고, 다시 염색하는 그 과정이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너무 힘들다.’ 생각하며 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렇게 천을 묶어놓은 모습을 본 순간 그것이 사람의 형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제가 심적으로 힘들기도 해서 더욱 천에 스스로를 대입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강의가 거의 끝나갈 때쯤, 교수님께서 저를 정말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염색에 기어코 성공했어요. 그전까지는 염색에 실패해서 색도 우중충하게 나오고 했는데, 그 수많은 고통과 실패 끝에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과 무늬가 천에 염색된 것을 보며 무척이나 기뻤죠.


그 순간 ‘삶은 영원히 힘들지만은 않겠다, 마지막에는 결국 밝은 색을 띠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들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 말씀해 주신 것처럼 평면 작업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데.

 

맞아요, 저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어요. 저의 작업이 단순히 평면 작업이 완성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내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원했어요.

 

사실 저는 그림만 딱 보았을 때는 작가가 의도한 바를 알고, 느끼기에 쉽지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설치나 영상을 통해서 작품의 주제가 순환되는 구조로 전시를 진행하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평면, 영상, 입체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을 항상 추구하고 있어요.

 

 

- 최근 진행했던 전시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전에 진행했던 전시 중 기억에 남았던 전시를 하나 소개받고 싶어요.

 

예전의 작업 중에서 말씀드려본다면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라는 전시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장애가 있는 동생, 그리고 그로 인해 지쳤던 가족들에 대하여 힘들다는 마음을 느껴왔거든요.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반에는 그런 저의 감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대중들로부터 공감을 얻기에는 힘든 주제일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도 저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관람객들만의 감상에 침투하고, 그들의 작품 관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작업을 진행해 오니 어느 순간부터 저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치유를 준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이 정점을 찍어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라는 전시에요. 그래서 그 전시에서는 제가 직접 찍은 동생과 가족의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하기도 했어요.

 

동생이 자꾸 물을 쏟는 행동을 하는데,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요. 제 동생은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체험해 볼 수 있는 인터렉티브 설치 작품도 같이 작업했었죠. 그래서 과거의 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그 전시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쪽을 키우는 경험이 인터렉티브 전시로 당신에게 다가왔습니다.





- 최근 여신 전시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은 다름 아닌 쪽을 키우는 경험에서 시작한 전시라는 점이 인상 깊어요. 천연 염색을 위해 쪽을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쪽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에 대해 보다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사실 제가 이전에도 한 번 천연 염색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사찰에서 천연 염색에 대해 배운 적도 있죠. 그런데 보통 천연 염료는 한약재 같은 것들이 많아. 재료를 사서 모으기 시작하니 벌레가 꼬이고 냄새도 나서 아파트나 원룸 같은 가정집에서 보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다면 제가 직접 길러서 염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쪽을 발견했어요. 쪽은 대한민국의 토종 종자가 있는데, 한해살이 식물이기 때문에 6.25 전쟁 때 멸종할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 현재는 여러 사람들에게 복원되어 다시 살아났죠. 쪽 염색이 정말 우리가 살면서 거의 최초로 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염색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어 나가고 보존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제가 쪽을 활용해서 하는 염색에 대해 배우는 선생님께서도 그분들 중 한 분이세요.

 

쪽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쪽 염색을 보존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토종 쪽 종자 씨앗을 받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 화학 염색과 자연 염색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나요?

 

확실히 화학 염료로 했을 때는 굉장히 강렬하고 다채로운 색감이 염색되어요. 원색의 느낌이 강하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색감을 시도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천연 염료를 활용하면 강렬한 느낌보다는 더욱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의 색들이 천에 스며들어요. 그래서 한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동양화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같은 천을 활용하고, 똑같이 수채화 재료로 하는데도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죠.

 

이렇게 정반대의 느낌이 천에 스며들어서 그에 대한 취향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 직접 무언가를 재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쪽을 키우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하.

 

제가 텃밭을 일구며 쪽과 함께 다른 채소들도 함께 키웠는데, 상추 같은 것들을 쑥쑥 잘 자라는 와중에도 쪽은 키우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결국 첫해에는 쪽으로 염료 만드는 것에 실패했어요.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에 인간문화재분들의 자료도 찾아보고, 홀로 각국의 천연염색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 심지어는 어민협동조합에 연락해서 굴껍데기까지 받아 조합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혼자 그렇게 방대한 지식을 공부하고 시도해 보니 아무래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쪽 선생님을 찾아뵈어서 올해는 간신히 성공했어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만큼, 정말 뿌듯했습니다.



 

 

- 그렇다면 쪽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천연 염색과 쪽을 주제로 한 전시를 고려하셨던 것일까요? 전시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아뇨, 그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단순히 ‘텃밭에서 쪽을 길러보자’라는 마음에 시작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텃밭을 일군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노동이죠. 잡초도 빠르게 자라고, 땅도 제가 텃밭에 대하여 잘 모르는 상태로 척박한 땅을 빌려서 땅을 갈아엎는 것부터 정말 크게 힘이 들었어요.

 

덕분에 저의 온 가족이 모여서 땅을 개간하고 모종도 심고 하는 과정을 갖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를 모두의 힘을 빌려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동반자들’에 대한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어요.

 

이후에는 더욱 비옥한 땅으로 밭을 옮겼는데, 그곳은 집과도 가깝고 산책로도 바로 옆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이전 땅보다 환경이 좋았어요. 옆의 텃밭 분들과도 연을 쌓을 수 있었죠. 산책로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 옆 텃밭 분들의 인심과 친절함, 텃밭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물의 소리 등을 느끼며 ‘이 텃밭에서 내가 혼자 있다고 생각해도 나는 다른 생명체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나 홀로 외로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쪽을 기르는 모든 경험에서 비롯하여 동반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주제로 하여 전시를 진행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텃밭을 일구며 가장 인상 깊었던 동반자를 말씀해 주신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동반자는 역시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전시의 영감을 얻은 것도 식물의 사유라는 도서에서 이야기되는 ‘인간 동반자들’이라는 개념으로부터였거든요. 자연 속에서 식물을 기르는 과정이었던 것인 만큼 다양한 생명체들로부터 힘을 얻었지만, 그래도 인간과 교류하고 서로서로 도와주는 과정이 진정한 교류이자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루스 이리가레는 『식물의 사유』에서 자연 속에서 감각적 초월을 경험할 때 '인간 동반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작가는 텃밭에서의 노동이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전한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작물을 가꾸며 생명을 키워냈고, 옆 텃밭 사람들과 수확물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을 형성했다.

(...)

주변에서 들려오는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자동차 소리, 새소리 등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동반자였으며,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며 시공간을 함께 공유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 ‘쪽’을 수확하고 염료를 만들고, 나아가 이웃들과 수확물을 나누는 경험은 작가에게 큰 기쁨과 의미를 선사했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공동체를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 보도자료 발췌




자연 안에서 부대끼는 모든 생명 공동체들, 전시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


 

- 이번 전시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있죠. 각 섹션을 소개해주시겠어요?

 

4개의 섹션을 순서대로 체험하여 제가 텃밭을 일구며 느꼈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전시 구성의 목표였어요.

 

첫 번째 섹션 <모종 심기>에서는 말 그대로 텃밭을 일구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인 모종 심기를 체험할 수 있는 섹션이에요. 관람객이 직접 모종삽과 물뿌리개를 사용해서 모종을 심고, 물을 줄 수 있도록 했죠.

 

이번 전시에서 함께 작업한 오브젝트 디자인 담당 이소희님이 다양한 물뿌리개를 디자인하고, 그 물뿌리개를 뿌릴 때 각각 어울리는 물소리가 나도록 하여 관람객들이 물을 주는 행위에 더욱 집중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했어요.





두 번째 섹션 <동반자들>은 관람객들이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여 그 안에 내재 되어있는 센서를 통해 360도로 텃밭에서 필드레코딩을 한 다양한 소리가 들리도록 되어있어요. 그래서 사람의 대화 소리, 새소리 등등을 함께 들으며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했죠. 실제 흙과 풀을 밟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푹신한 소재로 바닥의 길을 제작했고, 그곳을 밟으면 실제 저의 텃밭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리도록 구성했습니다.

 

저는 이 <동반자들> 섹션을 제일 좋아해요. 제가 이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가장 명확하게 담긴, 일종의 이번 전시의 ‘정수’ 같은 섹션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섹션은 <버드나무>인데, 제가 최근에 빌린 텃밭 근처에 버드나무가 크게 있어요. 저는 그 버드나무가 제 텃밭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버드나무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저는 정말 좋았기 때문에 관람객들에게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구성한 섹션입니다.





마지막 섹션은 <수확하기>라는 이름의 섹션이에요. 3개의 모니터를 배치하여 각각 모종 심기에 대한 영상, 동반자들에 대한 영상, 그리고 수확하기에 대한 영상을 재생시켰어요. 이 영상들을 통해 실제 텃밭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지금까지 관람해온 이 전시의 의도를 조금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섹션에서는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 배치된 하얀 꽃을 수확하여 관람객들이 실제 쪽 씨앗을 가져가고, 전시에 나선 이후 직접 쪽을 재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 정성이 느껴지는 전시입니다. 말씀만 들어도 실제 텃밭에 온 것 같은 즐거움을 엿볼 수 있는데,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려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전시장 그 자체였어요.

 

제가 직접 기른 쪽을 직접 전시장에 옮겨가고 싶었는데, 그러다보니 전시 기간동안 쪽이 살아있어야 했거든요. 쪽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햇빛이 잘 드는 통창이 있는 공간을 1순위로 고려했습니다.





또, 자연을 모방한 공간이지만, 아무래도 실제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인위적인 것으로 제가 느낄 수 있었던 자연의 경험을 최대한 느끼실 수 있도록 구상해야 하는데, 인위적인 것들을 갖고 자연물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면 오히려 어설프게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전환해서, 첫 번째 섹션에서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자연을 재구성하여 인공적인 공간을 만들고 두 번째 섹션에서 실제 자연을 대면하여 대비되는 느낌을 주도록 노력했습니다.

 

 

- 이번 전시는 다양한 아티스트님들과 함께 협업한 공동 전시이기도 한데, 함께 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제가 2023년에 아르코에서 주관한 에이프 캠프라는 예술 기술 협업 행사에 참여했어요. 그때 이번 전시에서 함께 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은 제가 기획 및 작품 제작을 맡았고, 센싱 및 통신으로 김창수, 사운드 제작에 두인경, 실감음향으로 드림스케이프, 오브젝트 디자인 및 작품 제작으로 이소희님이 함께 참여해주셔서 제작한 공동작품입니다.

 

제가 이번 전시를 위해 함께할 분들을 찾을 때 가장 중요시했던 점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정말 강렬해서, 서로서로 힘을 북돋우며 협업할 수 있는 분들이었어요. 그리고 저와 성격의 측면에서도 결이 비슷한 분들을 모시고자 신중하게 고민했고, 이후 한 분씩 컨텍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싶은데, 함께 진행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여쭤보았더니 감사하게도 다들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이번 전시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협업하는 과정도 참 즐거웠을 것 같아요. 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한데,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요?

 

아무래도 저에게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사전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특히 실제로 이 기술이 구현되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 지에 대해서 상상이 잘 안되었죠. 관람객과 센서의 상호작용이나, 그를 통한 음향 효과 등이 저의 머릿속에는 막연하게만 떠올랐죠. 아무리 자세히 여쭤보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전시 준비를 진행하며 점차 지식을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분야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3D 렌더링 워크샵, 천연 염색 워크샵 등을 통해 직접 서로의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전시가 더욱더 잘 준비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에도 인터렉티브 아트에 관심이 있어서 관람객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작업을 계속 연구해 왔어요. 하지만 이렇게 기술로 시도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죠.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모르는 분야의 아티스트님들과 협업하며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깨닫고 배울 수 있는 점이 정말 많았어요. 심지어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라고 여쭤봐도 그것이 구현되는 것을 보며, 이런 시대의 발전과 흐름을 잘 따라가고 습득해서 앞으로 더욱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었던 과정이었기도 합니다.





- 인터렉티브 전시뿐만 아닌, 작가님께서 실제로 쪽을 활용해서 염색하신 작품들도 함께 전시가 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위한 평면 작품을 제작하실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인 점이 있다면.

 

저는 이번 염색을 통해 쪽의 온전한 1년을 구현하려고 했어요.

 

제가 텃밭에서 1년을 지난 만큼, 쪽이 1년간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봐 온 거잖아요. 그래서 모종 씨앗부터 시작해서 모종의 크기가 되고, 더 자라서 가을이 되면 꽃을 피우고, 한해살이 식물이라 겨울이 되면 시들면서 다시 씨앗이 나오는 과정을 봤어요.

 

그런데 사실 일반적으로 쪽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쪽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라는지, 그 결과물을 갖고 어떻게 염료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죠. 사실 쪽이 꽃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저는 제가 직접 쪽을 키우기 시작하며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쪽의 1년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 1년을 구현하는 것을 제일 우선시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 그렇다면 그중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7월의 쪽>이라는 50호까지 큰 작품 중, 윗면이 태양처럼 염색된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제가 일부러 태양을 의도하고 염색한 것이 아님에도 의도치 않게 태양과, 그 아래의 쪽이 잘 구현이 되었거든요. 저는 항상 작업을 할 때 그런 우연적인 형상이 그림과 잘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기뻐요.






설혜린 작가의 목소리로 전시를 세심히 살펴봅니다.



-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추억이나 재미있었던 점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가 결국 이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혼자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실 제가 한 것이 완전한 농사라기 보다는 텃밭을 가꾸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텃밭을 기르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동시에 휴식의 과정이기도 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힘을 보태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동반자’들에 대해 고려할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 전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관람객들과 함께 즐겁게 소통하셨을 것 같은데. 이번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이번 전시에 찾아와주었는데, 정말 전시를 즐겨주었어요. 동반자분들도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며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행동을 하시고, 아이들도 자신의 몸만 한 물뿌리개를 들고 열심히 물을 주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보았죠.


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어린이 관람객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해 줄 줄은 몰랐거든요. 남녀노소 관계없이, 정말 즐겁게 전시를 즐겨주시는 모습을 보며 기뻤습니다.

 

 

-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은 작가님의 4년 만의 신작으로 구성된 개인전인데, 4년 동안 작가님의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과거, 특히 처음 천으로 작품을 전개하기 시작했을 때는 ‘고통’이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작업을 전개했어요. 그 당시에는 삶이 너무 힘들다고 느꼈고, 그 감정에 매몰되어 작업을 통해 저의 내면을 표출하고자 했거든요. 그래서 ‘고통과 희망’을 작품의 주 키워드로 잡았었죠.


그런데 가정을 꾸린 이후로 삶의 안정감을 느끼게 되며 주제가 많이 온화해졌어요. 그래서 명상과 치유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함께하는 동반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전시를 굉장히 오래 준비해 왔어요. 말씀해 주셨다시피 마지막 전시를 한 이후로 긴 세월 동안 방황도 하고, 다양한 생각도 해왔거든요. 그 기간 했던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번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 전시여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의 다음 전시도 무척 기대되는데, 앞으로의 전시에 대해서 생각 중인 부분이 있으실까요?


이동성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을 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원룸, 전세 등등 다양하게 살며 이사를 해왔고, 텃밭도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며 꾸준히 옮겨야 하거든요. 그래서 텃밭을 옮기는 과정에서 저의 집을 옮기는 과정이 함께 떠올라서 이동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제가 수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색다른 광경을 목격했어요. 묘지 바로 옆에 누군가 텃밭을 일궈낸 거예요. 심지어 그 옆에는 무단으로 누군가 개인 사유지 옆에 텃밭을 만들었다고 붙어있더라고요. 하하.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일군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엮어서 진행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 작가님의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 주신다면.


꾸준히 작업을 진행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하며 작품 활동이 어려워지는 분들도 많고, 금전적인 상황도 고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창작 활동의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꾸준함’이 아닐지 생각해요. 그런데도 저는 길게 길게 작업해서,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행복하게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실 홍보를 많이 하거나 작품 활동을 자주 하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저를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그래서 그 분들과도 계속 감정적 교류를 이어 나가며, 열심히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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