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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에 대하여 May 22. 2024

사촌이 장가가니 내가 눈물이 났다

#사촌이 뭐길래 #노총각 노처녀 동지



사촌에게 청첩장을 받은 건 꽤나 오래전이다.

그때는 별 감흥이 없다 결혼식이 다가 오니 아린 기분은 왜인지 모른다.


앞으로 펼쳐질 당연한 미래가 그려졌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경험하지 못할 장면들이 스쳐갔다.


사촌 동생은 이미 진즉 결혼을 해 애엄마가 되었다.

나랑 한 살 터울인 사촌 동생과는 어렸을 때부터 죽이 잘 맞아 해외여행도 여러 번 함께 다녀왔다.

가정을 이루고 애까지 키우며 사니 이제 둘이서 그런 시간은 아주 한~참이 지나고나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촌 오빠는 나의 동지였다.

나보다 더 산 오빠가 결혼을 하지 않으니 다행히 결혼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가끔 질문이 나와도 두 명의 나이찬 어른에게 던져지니 질문은 쉽게 부서졌다.

오빠와 나는 늘 능글맞게 넘겼다.

에이~ 천천히 하죠 뭐~

제 몸 하나 돌보기도 어려워서요~ 하며






사촌 오빠의 속내를 들은 건 몇 년 전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면이 있으셨다. 


장자가 제사를 지내는 건 당연하고

장자와 장손은 매주 본인 집에 와 인사를 하길 바랐다.

강요나 화는 없었지만 돈 많고 쌩쌩한 노인의 바람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외손녀였고 어릴 적에는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장손이 바라본 엄마(내게는 숙모)의 힘듦이나 부당함, 고충은 나이가 들어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 가끔 내게 할아버지에 대한 가벼운 불만 토로하는 걸 보며 나랑 

마냥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나와 시각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빠는 결혼을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사나 여러 가족 문화에 대응하기가 더 유연해질 때까지

아내가 될 사람이 힘들어지지 않게

분란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아주 오래 연애를 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이 좀 지난 어느 명절날 결혼 발표를 했다.


할아버지는 장손이 결혼하는 모습을 못 봐서 아쉬우셨겠으나

오빠는 현명하고 남편감으로 정말 좋은 남자라 생각했다.






내 소중한 사촌의 결혼식 다가올수록 드는 이 서운한 마음은

나이 많은 노총각 노처녀 동지가 한 명 사라지는 것에서 오는 허전함이 아닌

우리의 가족 형태가 바뀌고

나의 외가의 문화가 또 바뀌고

이제 구세대의 것들은 사라지고 다음 세대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겠군 하는 헛헛함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쭉 외가댁 근처에 붙어살았던 나이기에

그 누구보다 사촌들과 교류가 많았다.

또 사촌 오빠는 매주 찾아왔기에 한 달에 서너 번은 한두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이 나이까지 사촌 형제가 이러기가 쉽지 않다.


외갓집에서는 신정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구정에는 시댁 일을 챙겨야 하다 보니 신정에 그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다.

손주는 사촌 둘에 나, 내 동생 넷이 전부인 단출한 숫자의 외가 식구들은

12월 31일이 되면 모두 외가댁에 집합해 함께 카운트 다운을 보거나, 보신각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거나, 마당에서 작은 폭죽놀이를 했다.


그리고 모두가 한 지붕 아래 잠들고

다음 날 아침이면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동호대교나 남산으로 다녀왔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리고 첫 일출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나는 

30번이 넘는 행사동안 딱 한 번 남산행에 참석해 봤다. 


내 기억이 있고서는 한 번도 빠짐없이 행해지던 행사가 

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마치 힘을 끌어내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었다는 듯이 단 번에 뚝 끊겼다.

그 누구도 이 문화를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뚝-

사랑하던 문화를 추모하지 못해 또 조금 헛헛했다.  






37년을 살면서 귀한 순간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걸 얼마나 많이 겪었나

아끼던 문화가 사라지고

형태와 관계가 변하고

인연이 끝나고

이제는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가슴이 시렸다.


너무 오래 내 가족을 꾸리지 않고 원가족에 머무르다 보니 보통보다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늙고

조카들이 자라고

또 그다음 세대가 태어나는 걸 보고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이제는 다시없을 포근함과 안정감, 웃음이 가득히 머무른 기억 장면 장면들은

내 마음속에 고이 넣어두고

사촌들이 여유가 많아질 때 꺼내서 함께 추억해야지






사촌 장가가는 생각을 하며 세 번이나 눈물을 흘린 내가

어이없고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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