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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에 대하여 Apr 24. 2024

술 취한 아빠의 뽀뽀

아빠의 주사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잠든 두 딸을 깨웠다.

그것도 무방비한 우리 방에 들어와 기습 뽀뽀로 사람을 깨웠다.


그럼 짜증 반, 몽롱함 반에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가야 했다.


그 다음엔 아빠의 허밍에 맞추어 아빠와 브루스를 추기도 했고

노랫말 속에 담긴 하소연을 듣거나

애교 강요를 계속 받았다.

엄마는 어우~ 술 냄새! 이렇게 단호하게 아빠를 밀어냈기 때문에


아빠의 주사를 받는 건 온전히 우리 두 딸

아니 동생과 나는 나이 차가 꽤 났기 때문에 한참 어린 동생보다는 보통 큰 딸인 내 몫이었다.


그리고는 아빠는 용돈을 쐈다!

보통 레퍼토리는

아빠 제일 좋아하는 사람 누구?! (이럴 저요 저요 해야 용돈을 받을 수 있다 ㅎㅎ)

아니면

아빠 볼에 뽀뽀해 주면 용돈 준다~ 이런 협박을 수행하면

용돈을 받았다.


적게는 오만 원, 운이 좋은 밤이면 이십만 원 까지도 받아서 매우 쏠쏠했다.

물론 엄마는 별 거 안 하고도 뽀나스를 가장 많이 받았다. 







아프리카 여행 준비로

우리 가족은 단체로 황열병 주사를 맞았는데,

황열병 주사는 약이 세서 접종 후 며칠 동안 음주 금물이었지만

아빠는 그걸 또 어기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아빠 말로는 잠깐 기절했다고 한다.

기절에서 깨어 온전히 걸어 집에 들어온 아빠 이야기만 들었기에

얼마나 아빠가 놀랬는지, 상황이 얼마나 무섭게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날 이후로 거의 술을 안 드셨다.


드셔도 가족 식사에서 맥주 한두 잔이 전부였고, 

취한 모습은 할머니 장례 후 형제들과 한 잔 걸치고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엄마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서 

슬픈 브루스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이 마지막이다.

이것도 이제는 십 년도 더 전.


엄마와 동생과는 다르게 아빠와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안 받았다.

온몸이 빨게 지고 해독을 못해서

술 마시면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체질이었다.


아빠가 술을 안 마시는 건 건강을 생각했을 때 너무 좋은 일이지만

때때로 아빠의 주사와 

우리의 귀찮고 짜증 나면서도 용돈을 받고 좋아하던

그 단란하고 시끌한 모습이 눈물 나게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동생까지 상경하여

네 식구가 온전히 뭉치는 날은 일 년에 보름 남짓이고

그 조차도 각자 약속들이 있기에 같이 하는 식사 자리는 손에 꼽는다.


또 아빠는 은퇴했고, 경제력은 현재 내가 으뜸이라

아빠가 인심 쓰듯 용돈을 뿌릴 일도 없다.

나도 없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리운 날들이여

아.. 귀여운 우리 아빠! 늙지 마세요.


혹시라도 내 아이가 생기면 엄마 어릴 적에는~ 네 할아버지는~ 이랬단다~ 이야기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잘 간직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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