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노처녀 손녀의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는 언제부턴가 부모님의 존재감을 가졌다.
20대 이후 노처녀가 된 지금까지 나를 돌봐주신 성인 단계에서 제2의 부모 역할이었달까
그래서 누구보다 조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장례식에는 멀리 지방에서 와 조문한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와 존재의 무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히 좀 더 깊고 무겁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자주(거의 매일) 보며
인생과 시각, 인간과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고 배웠다.
가끔 이 이야길 풀어봐도 좋겠지-
치매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던 때.
하나 다짐했던 것이 있는데
할머니 이야기를 글로 남겨놔야지~!라는 다짐.
하지만 미련하고 게으른 나는 결국 수년간 수많은 다짐을 한 번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고작 A4용지 2장 분량의 글 밖에 쓰지 못했다.
이제는 내 이름이 뭐죠? 하고 물으면
열에 한둘은 모른다며 아예 딴청을 피워버리시는 할머니
이제 더 이상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줄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이미 했던 얘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 얘기 나 엄청 많이 들었어요~
아우 또 그 이야기야~~
하고 이야기를 잘라버린 내가 참 나쁘다.
내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건 수십 번을 반복해 전한 기억뿐인데.
이건 진짜 흩어지기 전에 기록해 둬야지.
이제 할머니와 대화 두 번 왔다 갔다 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면서도 또 눈물이 난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보며
인간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없으면, 기억이 다르면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존재가 되듯이.
세상에 '걸리는' 것들은 다 나쁘다.
암, 나쁜 남자, 사기꾼, 돌부리, 치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