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미워하는 마음과 #미워하지 않는 법
애초에 '미워함'과 '싫어함'은 성질이 다르다.
싫어하는 건 무시로 스킵이 가능하다.
또는 덮어두고 외면하거나-
하지만 미움이란 이게 어려운데
미워하는 마음이 시시때때로 불쑥 고개를 들어 나도 모르게 잠식당하고
아무리 덮으려 해도 스멀스멀 올라와 내 감정과 시간 낭비를 초래하며
나 자신까지 괴롭힌다.
또 미움의 대상은 보통 사람에게만 해당하고.
거기에 더해 보통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끼칠 것 같은 대상을 미워한다.
이유 없이 싫어는 해도 이유 없이 미워하기는 어렵듯이-
살면서 사람을 미워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 손에 꼽을 테다.
옆에 있는 엄마는 싫은 사람은 있었어도 미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밉기란 그만큼 드물다.
미운 사람 하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20대 초반, 짧고 굵직하게 미워했던 사람 B.
미워하는 마음의 발단은 배신감이다.
그 배신감은 지금 보면 글로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사소한 것들 몇 가지의 연타였다.
그래도 감안을 해줘야 할 것이 그때 나는 지금의 반토막 정도밖에 안 살았기 때문에 사소하지가 않았다.
순수의 시절-
나는 B를 미워하는 마음을 여기저기 표출하고 다녔는데(a.k.a 뒷담화)
B가 나에게 저지른 소소한 행동들을 대놓고 떠들고 다니며
내가 얼마나 분했는지.
얼마나 B가 의리 없는 사람인지 친한 친구들에게 모조리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릴 적부터 스위스처럼 중립 지대에 머무르며, 남의 이야기를 옮기지도 편들지도 않는 사람이라 내 호박씨의 영향력은 컸다.
그 아이를 미워할 무렵 반년 남짓 외국에서 지내게 됐는데
이때가 바로 내 인생의 황금기이자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없던 한가함과 무료함이 과잉된 시기였다.(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
그러다 보니 가만히 머릿속에서 노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문득 배신감이 들었던 사건을 다시 복기하고
또다시 미운 마음이 들고 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무래도 복기 과정에서 MSG와 왜곡이 섞여 들어 미운 마음이 더 강해졌던 것 같다.
어린 나이를 참작해도 그렇게까지 미워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지구 반대편에 누워
손 끝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마음껏 B를 미워했다.
사실 B와는 표면적으로 싸운 적이 없었다.
워낙 미묘하고 소소한 일들이라 애초에 싸울만한 껀덕지가 아니었다.
그저 혼자 상처받고, 분노하고, 마음으로 거리를 두고, 미워했을 뿐-
B와는 이후에도 교정에서 마주치면 데면데면 아는 체도 하며 시간을 흘리다가
B가 내 마음의 손절각을 눈치채고서부터는
수년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구애가 시작됐다.
씹어도 꿋꿋이 연락하고, 거절해도 또다시 이야기하고
틈만 나면 불러내고, 엮이려고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다시 친구 포지션에 받아들였다.
이때 이미 나는 사회생활도 하고, 20대 후반이 된 만큼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사실 B를 다시 친우로 삼는 건 내게 꽤 어려운 일이었다.
미운 마음은 진즉에 가라앉았지만
미워하는 동안 내가 벌여 놓은 말들이 치부처럼 남아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걸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다. (뭔가 내 속이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Y값이 나와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간혹 내가 그런 부분이 있다.)
다시 친구가 되어야지 마음이 든 것도 오래 걸렸지만, 결심을 하고도 속마음을 내보이는 건 더 오래 걸렸다.
어느 날 예고 없던 통화에서 오래 준비한 말을 꺼냈다.
진심을 전하는 건 그 말이 무엇이든 간에 용기가 필요하다.
"B야. 나 사실 너 되게 미워했어. 그래서 니 욕도 좀(많이) 하고 다녔어"
"아~ 알아ㅎㅎ 그럴 줄 았았어ㅎㅎ"
"응 니가 좀(많이) 의리 없고, 별로라 생각했거든."
"ㅎㅎㅎ..."
".. 욕하고 다닌 거 미안해. 이제 안 해"
B는 이미 내가 본인을 미워했다는 것도, 욕하고 다닌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뒷담화를 까놓은 친구들이 B에게 돌려 까기처럼 무안을 주거나 핀잔을 놓는 일들이 내 눈앞에서도 몇 번이고 있었다.
그래서 눈치를 챘나?
내게 재밌는 얘기를 해준답시고 했던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B는 내 팔찌를 하나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패션 팔찌가 많았고, 오천원~만원 정도의 가볍게 산 팔찌라 가져간 줄도 잊고 있었다.)
본인이 그 팔찌를 끼고 있을 때마다 꼭 안 좋은 일들이 생겼단다.
뭐 어디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빡치는 일이 생긴다거나, 전혀 지각할 일이 아닌데 뭔가가 꼬여 지각한다거나 하는 자잘 자잘한 사고들이 여러 번 있고서는 그 팔찌를 안 꼈다고 했다.
B가 말한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내가 가끔씩 치열하게 B를 미워하던 시기여서 혼자서 뜨끔하며 소름이 끼쳤다.
앞서 말한 손끝이 저릿하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고
진짜로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감정에 몰입하며 미워한 것인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하던 것이 설마 일종의 살을 날리고 있었나??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 서리도 내린다던데? 여러 민담까지 스치며
B의 재미난 이야기는 나에게 죄책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