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나는 세상을 이따위로 이해하련다>
03. 장난감
지금은 ‘피규어’라는, 마치 대단한 전문 용어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나이 서른 중반에도 이걸 사 모으는데 충분한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말이다. 가장 최근 구매한 피규어가 일본에서 사 온 포켓몬 고오스와 팬텀 제품인 걸 보면 내 취향은 10살 ‘장난감’을 모으던 때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결정적으로 피규어는 집안 적절한 곳에 전시해 놓으면 그걸로 그만이지만, 장난감은 방과 후나 잠들기 직전까지 나와 피부를 맞대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했다는 점이 다르겠다. 나의 의문은 이 지점에서 갑자기 피어났다. 나는 왜 더 이상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가?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취향이 성숙해서라고 하기엔 모순이 많다. 앞서 말했듯 나는 여전히 팬텀 등 유령 포켓몬 장난감을 모은다.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이나 도넛이지만 스누피나 어드벤쳐타임 장난감을 끼워주면 온 동네 매장을 돌아다닌다.
심지어 돈도 더 많이 쓴다. 남부터미널 국제전자상가나 일본에 갈 때마다 들리는 만다라케는 최소 두세 시간, 일이십만 원은 그냥 앗아가니까 말이다. 반대로 이 실물 장난감과의 상호작용 및 교감만 현저히 감소했다. 그저 선반이나 TV 위에 올려다 놓고 한 달에 한 번씩 먼지만 털어줄 뿐.
이 아이러니의 근원을 찾아 머릿속을 한참 뒤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경북 포항시 오천읍 촌 동네 300번 좌석버스 안이다.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의 관심은 온통 엄마 가방에 붙은 은색 별 모양 장식에 쏠려있다. 이 별을 떼어내 엄지와 검지로 끝을 잡고서 내 이마에 대기만 하면, 동시에 울트라 변신!을 외치기만 하면 나는 슈퍼히어로 울트라맨이 될 수 있으니까.
내 기억 속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은 1979년작 ‘더★울트라맨’으로 국내에서는 92년 MBC에서 첫 방영했다. 울트라맨 최초의 애니메이션 버전이자 스토리 면에서 상당한 수작으로.. 여기까지 하겠다. 어쨌든 극중 울트라맨은 별 모양 아티팩트를 이마에 대는 식으로 변신을 했는데(제목에 별이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세 살쯤으로 추정되는 나는 이 별에 완전히 꽂혀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조르고 졸라 엄마의 큰 한숨과 함께 별을 얻어낸 나는 버스 안에서 몇 번이고 큰 소리로 변신했고, 엄마는 연신 죄송합니다, 니 진짜 조용히 안 하나를 반복했다. 다만 이 낭만의 시대에는 주변 어른들이 오히려 나를 치켜세워줬지. “와, 니 믓지네!”, “목소리가 크다하이 크게 되겠다!” 그렇게 난 내가 기억하는 첫 장난감인 별 장식을 가지고 직접 울트라맨이 돼 잘 놀았고, 엄마 말로는 이미 버스에서 내리던 시점에서 별 장식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유년기에 VHS 시대 직격탄을 맞은 나는 온갖 만화영화와 일본산 특촬물(후뢰시맨, 바이오맨 등이 가장 유명하다)에 빠져 살았고, 열심히 모은 용돈은 대부분 주말에 비디오를 빌리는 데 모두 소진했다. 당연하게도 장난감은 이 비디오 속에 나오는 변신 로봇들이었다. 나는 이 변신 로봇만 보면 눈깔이 아주 뒤집어졌는데, 한 번은 친구 병수네 집에서 '세븐체인져(로봇 하나가 총 7개 형태로 변신한다!)'를 발견한 뒤 7년 차 인생 처음으로 '훔치고 싶다'라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 기억이 난다.
골 때리는 것은 나는 내 솔직한 감정을 병수네 아주머니께 말씀드렸고, 아주머니는 속 마음을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세븐체인져를 며칠 빌려주셨다. 병수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줍게 로봇을 받아 든 나는 며칠을 신나게 가지고 논 뒤 이를 병수에게 돌려줬다. 더 미련은 없었고, 이렇게 소중한 걸 빌려줬다는 사실에 온통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해 병수를 한참 챙겨줬던 기억이다. 뽀빠이도 사주고, 감자깡도 나눠주고. 지금 와서 차근차근 돌아보면 나는 참 존경받을만한 어른들 사이에서 자랐다.
허나 내 방 장난감 바구니에 든 로봇 수는 친구들과 비교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하루는 아빠 손을 잡고서 시장 안 장난감 가게를 들어갔다. 신이 잔뜩 난 나는 이리저리 로봇들을 한참 구경했다고. 그런 나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아빠는 "이제 그만 가요"라는 내 말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다. 하나 골라 보라는 말에도 괜찮다고 말하던 나는 한 번도 무언가 갖고 싶다고 떼쓰는 일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아빠가 내 취향을 잘 살펴 사다 주는 입장이었는데, 내가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른 채 녹화해 놓은 로봇 만화영화를 보고 또 보고 있으면 아빠가 이를 기억해뒀다가 퇴근길에 깜짝 선물로 사다 주곤 했다. 기쁨에 방방 뛰는 내 모습은 아빠에게도 큰 기쁨이었겠지. 그리고 이 같은 장난감 구매 패턴은 결국 아빠의 '우리 아이 지능 개발' 욕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으리라. 그 결과 내 장난감 바구니 옆에는 레고 블록이 한 무더기였다. 각종 시리즈별로 사주신 게 분명했으나, 난 모든 블록을 한 곳에 싹 다 부은 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몰두했다.
손에 블록이 쥐어지면 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다. 탱크, 비행기, 우주기지를 만들 수 있었음은 물론이요, 내가 좋아하는 변신 로봇들도 거뜬하다. 당연히 완성품 품질은 매우 조악했겠지. 하지만 그 시절부터 난 내 마음대로, 내 손 가는 대로 블록을 붙여나간 뒤 하나하나의 완성품에 고유한 이름과 역할을 붙여주길 즐겼다. 그리고 이것들을 방 이곳저곳에 배치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올마이티로서 내 작품들을 내려다보면서 침략과 방어, 협력과 배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 엉성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즐겼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말이다.
이후 나의 놀이 대상은 PC 게임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내가 아끼던 로봇들과 레고 상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냐면 나는 내 장난감들이 언제 어떻게 처분됐는지 대학생이 되어서야 문득 궁금해졌다. 중고 피규어 가게에서 후뢰시맨 로봇이 20만 원 이상, 레고 1990년대 오리지널 우주왕복선은 부르는 게 값이란 걸 깨닫고 나서야 말이다. 한때 주인으로서 장난감들의 행방을 추궁하는 내게 엄마는 "보육원에 기부했다"라며 수사 종결을 선언했지.
그리고 내 소중한 장난감들이 떠나갈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았다. 주어진 이야기와 주어진 놀이 방식 안에서 이를 소비하기 바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건 플롯이 너무 평범해, 저건 결국 오이디푸스왕 엔딩이니 고전 재탕이야, 요건 유행이나 따라가는 렉카 콘텐츠일 뿐이라며 평가하기 바쁘다. 그리고 끝. 나아가 콘텐츠 길이가 짧아지니 그 평가는 더 단순하고 멍청해진다. 5분짜리 유튜브나 10초짜리 쇼츠를 넘기며 재밌다/재미없다만 반복하고 있다. 매일매일.
내게 장난감은 인풋과 함께 아웃풋을 책임지는 존재였다면 말이지. 지금 선반 위를 장식하고 있는 피규어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서글퍼진다. 그 시절의 감동만 붙들고서 지금을 버티는 나, 더 이상은 창조도 모방도 할 수 없어 창작자들의 배터리가 돼 버린 나, 직업적으로 매일 읽고 듣고 쓰지만 결국 내 이야기는 쓰지 못하는 나. 동시에 서른 중반을 넘어가며 점차 유연성을 잃어버리는 내 대가리는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만들어 나를 제자리에 주저 앉히려 든다. 넌 내 편이니, 남의 편이니.
새로운 인풋이 필요하다. 다소 억울한 것은 하필 내가 유년기 때 PC 게임, 온라인 게임 혁명이 일어나 나를 잠 못 들게 했고(손과 발 크기는 키 185cm들 보다 큰 나..), 그렇게 군대에 2년 동안 감금돼 100여권의 책을 읽고 나오니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 밤새도록 커뮤니티에 유튜브에 낄낄거리다 지쳐 잠들게 했다. 재료를 모으고,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을 잃어버린 나는 요즘 너무 무기력하다. 나를 위해 잠시 신문물은 치워두고 처박아 뒀던 김승옥을 꺼내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