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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d River Jul 02. 2018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모질게 몰아치는 고난과 슬픔을 당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이겨 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찾아보면 <올드보이,2003>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의 OST 분위기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OST는 비슷한 인상을 준다.)의 오대수처럼 다가오는 시련에 장도리로 맞서듯 투쟁할 것인가? 혹은 <버킷리스트,2007>의 자동차 정비사 카터와 재벌 애드워드처럼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맞서 여생을 즐겁게 보낼 것인가? 극단적으로, <델마와 루이스,1991>처럼 그들을 절벽으로 몰아넣고 굴복시키려 드는 세상의 편견과 조소를 뒤로 한 채 죽음을 택할 것인가? 무수히 많은 시련과 고난은 삶이라는 시간의 근원적인 구성원인 듯 빈번히 어떤 형태로든 찾아온다. 마치 날이 선 검과 번뜩이는 갑옷 그리고 입김을 거칠게 내뱉는 말을 탄 무장한 중세 시대의 기사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망령에 맞서 어떻게 굴복시켜야 한단 말인가

출처 : 네이버 영화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캐네스 로너건' 감독은 이러한 삶 속의 원형적인 문제(그런 문제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게 삶의 구성이라면)들을 담담히 전달한다. 그의 전작인 <유 캔 카운트 온 미,2000>에서 역시 그렇다. 남매인 '루디(로라 리니)'와 '테리(마크 러팔로)'의 가치관 대비는 확연하지만 각 자가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며 삶을 마주하고 나아가는 걸음걸이는 그들의 핏줄만큼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삶을 마주하는 방식의 차이지 방향성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 가족 간의 결속은 상당히 큰 요소로 자리한다.(유 캔 카운트 온 미의 가족관계 설정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유사하다.) 상처 입은 새끼 새가 보듬어지고 위로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의 역할을 두 영화를 통해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덧붙이자면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각본상과 인연이 깊다. <유 캔 카운트 온 미>를 통해 제26회 LA 비평가 협회, 제65회 뉴욕비평가 협회, 제16회 선댄스영화제, 제35회 전미 비평가 협회 등에서 각본상 수상했으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미국,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두 각본상을 받았다. 그만큼 케네스 로너건의 시나리오가 탄탄하며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소 아쉽고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점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연 '케이시 애플렉'의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보여준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그의 성추행 파문을 덮으면서까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인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시나리오 얼개는 이렇다. 아파트 관리원으로 일하는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는 형인 ‘조 챈들러(카일 챈들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형의 죽음과 함께 과거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괴로워하는 ‘리’ 설상가상 형은 유서를 통해 ‘리’가 자신의 아들인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되어주길 바라며 이사비와 양육비까지 남긴다. ‘리’는 조카인 ‘패트릭’을 위해 맨체스터에 정착하고자 하지만 그마저도 과거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맨체스터의 현실과 사람들의 멸시로 결국, ‘리’는 ‘패트릭’을 형의 친구인 ‘조지’에게 입양 보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시나리오 전개는 ‘리’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의 슬픔에 천천히 다가간다. 또한 점프 컷(Jump Cut) 편집을 통해 과거와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하며 마치 꿈에서 깨는 듯한 인상을 준다. ‘리’의 과거(맨체스터를 떠나 퀸시에 정착하기 전)는 변호사와 형의 유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패트릭’의 후견인이 될지 고민하며 회상(플래시백)을 통해 모두 드러난다. 그는 추운 겨울,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과 술과 마약을 하고 탁구를 치며 새벽까지 시끄럽게 떠들다 아내에게 크게 혼난다. 결국 '리'는 친구들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데 추운 날씨 탓에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장작을 평소보다 많이 넣게 된다. 그 후 맥주를 사기 위해 마트를 다녀온 사이 집은 불타고 있고 두 딸과 아들은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죽고 만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리의 실수로 판단하고 무죄를 확정 짓지만 '리'는 납득할 수 없다. 결국 그는 맨체스터를 떠나 퀸시에 정착하는데 그가 사는 원룸은 반지하로 누구 하나 들이기 힘든 공간이다. 영화 초반에 작은 창 틈 새로 보이는 창살을 보아 그곳은 그에게 집이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 위한 감옥에 가깝다. 또한 집 앞의 눈을 계속 치워내는 장면에서 겨울이 되면 천천히 내려 쌓이는 눈처럼 자신을 뒤덮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걷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리’에게 과거는 행복한 기억과 가슴 아픈 기억이 한데 뒤섞여 맨체스터에 뿌리내렸다. 무엇보다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건 맨체스터의 바다다. 영화 초반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리'는 그의 형과 조카인 '패트릭'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시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며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현재와 전혀 다른 모습의 그를 보여준다. 또한 아내가 ‘왜 배를 못 타서 안달이야’라고 묻자 그는 ‘바다가 좋으니까’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가 맨체스터에 머무는 동안 바다는(한때 ‘리’에게 행복의 상징이었던) 그의 가시거리에서 얼쩡대며 그를 옭아매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리'는 그런 무자비한 행복의 기억에 주먹을 날린 것이리라. 맨체스터의 바다가 품고 있던 행복을 스스로 망쳐버린 자신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의 표현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후회와 그에 따른 죄책감은 이들을 발현 시킨 문제 자체에 있기보다 그 이전,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었던 행복한 기억이 발목을 붙잡으며 현실을 무망하게 만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경험이 내 행동을 결정하는 거야, 지도처럼 참고하면 실수도 줄어들지''리'가 조카인 '패트릭'에게 하는 대사다. 지난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일어날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삶이 빗어낸 경험이라는 항아리를 실수라는 망치로 깨뜨렸을 때 찾아오는 위기감, 절망감 등은 마치 피흘린 뒤 생기는 딱지 처럼 우리가 다시 마주할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풍파들이 어떻게 무뎌지는지 알려준다. 삶을 뒤흔들 무자비한 시련을 아파하고 힘겨워 하는 소모적인 행동과 감정들은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흘려보낼 실수를 불러일으킨다. '리'는 그렇게 세월 속에서 깎이고 깎여 떨어져 나가 마지막 남은 '패트릭'이라는 조각을 간직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실수'가 그의 '실수'를 이겨낼 '경험'이 되어 또 소중한 것을 놓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만드는 지도가 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게 극의 후반 봄을 맞이하며 '리'와 '패트릭'은 '조'를 떠나보낸다.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기억들이 서서히 녹아드는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마주하게 될까? 누구나 추측해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순 없다. 마지막, '리'와 '패트릭'이 배를 타고 맨체스터의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낚게 될 것인가 한때는 행복했고 또 한때는 괴로웠던 맨체스터의 바다에서 말이다. '리'의 말장난처럼 그들을 집어삼킬 커다란 상어를 낚을지도 모른다. 또는 어렸을 적 '패트릭'처럼 깜짝 놀랄만한 대어를 낚을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맨체스터의 바다란 그런곳이다. 또 그들은 맨체스터의 바다에 의해 지독한 삶의 장난을 이토록 꿋꿋하게 영위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처럼 바다 위에 우뚝 모습을 들어낸 바위가 아름다워 보이는 건 긴 세월동안 그 모진 풍파를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 참고 기다리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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