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지하철 빈자리에 앉아 노트를 펴고 펜을 들었다. 축 처진 눈꺼풀의 도톰한 이불을 애써 들추며 잠을 저 멀리 내쫓을 궁리를 해봤으나 도무지 쉽지 않았다. 한숨이 노트의 지면을 한껏 뒤덮을 때쯤. 문득, 고개를 들어 지하철에 몸을 실은 채 좌우로 덜컹거리는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봤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사람, 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 서로에게 기대 의지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풍경을 이루었다. 다양한 탑승객들의 종착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시간 속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함께한다는 의미다. 승객이 단 한 명뿐이라면 이 길고 덩치 큰 쇳덩어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존재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온건히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전제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해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며 삶을 지탱한다. 그것은 대단한 결속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당위에도 소통이란 쉽지 않다. 아무런 매개 없이 이전에 본 적 없는 타인에게 다가가기란 상상만 해도 어색한 일 아닌가? 어쩌면 예술은 그 애매하고 거북한 경계에서 소통의 장벽을 무너뜨릴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큰 공감을 형성할수록 대중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는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그런 매개체 같은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과 예술을 향한 열정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동화에 우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매료된다.
영화의 얼개는 이렇다. 프랑스 영화의 거장 감독인 ‘아녜스 바르다’와 포토그래퍼인 ‘JR’은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고 다른 듯 비슷한 두 인물은 함께 영화를 찍기로 결정한다. 그 후, 둘은 사진을 찍은 뒤 5분 만에 현상 가능한 포토 트럭을 타고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며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사진을 찍고 다양한 건물과 사물에 붙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를 완성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등장하는 ‘아녜스 바르다’와 ‘JR’을 잠깐 소개하자면 우선, ‘아녜스 바르다’는 1928년생으로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 기수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장 뤽 고다르와 르네 클레망과 같은 감독들과 함께 활동했으며 프랑스의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자크 드미’와 1962년에 결혼하여 1990년에 사별하였다.(영화의 마지막에 아녜스가 언급하는 ‘장 뤽’과 ‘자크’는 프랑스의 거장 영화감독들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처음,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25살 무렵부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녀 역시 프랑스의 수많은 뉴웨이브(New Wave) 감독 중 하나로 ‘작가주의’의 영향을 받아 ‘Cinécriture, (시네크리뛰에르)’'Cinema(영화)+Ecriture(글쓰기)'라는 단어를 통해 카메라를 펜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또한 그녀는 여성운동가로 자신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는 아니지만 자신의 사진과 필름 등 본인이 가진 표현 방식들로 이야기한다고 말했으며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행복, 1964>, <방랑자, 1985>,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등이 있다.
‘JR’ 그는 10대 때부터 옥상이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 그라피티를 시작했고 친구들과 우연히 주운 카메라로 자신들의 행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도시의 벽과 외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벽을 이용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파리의 주택에 젊은이들의 초상화를 거대하게 전시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성은 영웅이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를 통해 딱딱하고 무거운 예술이 아닌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로 세상을 마주했다. 또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TED상을 2011년에 수상하였으며 2018 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는 동화 같은 그림체에서부터 현실로 디졸브(Dissolve) 되며 시작되는데 독특한 점은 다큐멘터리 장르지만 극영화의 연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아녜스 바르다와 JR은 서로의 만남을 마치 운명처럼 표현한다. 자신들이 언젠가 길 위에서, 정류장에서, 빵집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첫 시퀀스를 통해 연출하며 ‘피루 플라주 유령 해변 마을’에서 집배원이 알파벳 ‘N’ 모양의 작은 팻말을 전달하는 장면에서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장르를 타파하고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예술의 의미와 그 가치를 제고한다. 다시 말해 예술은 사람들이 경외감을 가지며 고고하게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 익숙하고 재밌는 것이며 이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카메라’다. 바르다와 JR이 사람들의 삶 속에 아름답게 그려낸 벽화들은 다시 사람들의 카메라 속에 담겨 추억으로 자리매김하며 SNS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예술은 함께 나눌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플롯은 옴니버스 형식처럼 그들이 선택한 로케이션마다 각각의 스토리와 독창적인 사진을 벽에 전시하며 단편적이면서 하나 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특히 ‘피루 플라주 해변 유령마을’과 ‘르아브르 항만’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영화 속에서 바르다와 JR은 포토 트럭을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피루 플라주 해변’을 찾아간다. 사람들이 떠나 폐허가 된 흉흉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바르다와 JR은 주민들을 모아 포토 트럭에서 사진을 찍은 뒤 인화하여 자신의 사진을 직접 마을에 산재된 낡은 건물들 벽에 붙이게 한다. 남녀노소 모두 즐겁게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또 그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사람들과 공유하며 간직한다. 놀랍게도 ‘유령마을’이라 불리며 음산하던 그곳은 어느새 활력으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흔적이란 참 특이하다. 각각의 작은 온기들이 죽어있는 것들에 생명을 부여한다. 그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태동을 규정하는 일이 아닐까? 생기의 빛이 저물던 폐허를 그토록 눈부시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향기는 우리가 머문 자리에 생명을 남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특권일지 모른다.
이후 바르다와 JR은 ‘르아브르 항만’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아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남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아내들은 이들의 결단을 묵묵히 지지하며 남편들의 힘이 되어 준다. 남성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항만의 한 복판에 그녀들의 거대한 사진이 붙은 컨테이너 박스가 중장비들을 통해 당당하고 우뚝하게 세워진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녀들 역시 이 르아브르 항만의 커다란 일부를 차지한다. 그녀들의 지지와 성원이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면 말이다. 처음 검은 옷을 입고 있던 그녀들은 어느새 흰옷을 입고 자신의 사진이 프린팅 된 거대한 컨테이너에 앉아(그녀들의 심장 위치) 날갯짓을 한다. 편견으로 부터의 자유로움, 성별로 역할을 구분 짓는 게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당위성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예술의 경계에 차별의 잡초 따윈 자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르다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알파벳 모양의 작은 팻말을 들고 있는 걸 보는 장면이다. 그녀의 눈을 통해보는 알파벳들은 초점을 잃은 듯 흐릿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우울해하거나 자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흐릿해도 괜찮다.'라고 말하며 웃어넘긴다. 세월은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거장 영화감독인 그녀에게서 초점을 앗아 간 대신 혜안을 선물했다. 예술가에게 눈이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의 물 길 위에서 무엇을 두 눈에 담아야 할까? 마냥 둥둥 떠다니기만 해서는 이 길의 끝인 폭포의 수렁 앞에 초연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르다처럼 '죽음은 두렵지 않아, 다 끝날 테니까'라고 말하며 미련 없이 죽음을 고대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발자취가 헛되지 않았음을 또 그녀의 겸허함을 말해준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시퀀스는 바르다와 JR이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영화의 전개는 대부분 이 둘의 보이스 오버(Voice-Over)로 진행되는데 닮은 듯 다른 둘은 55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극 초반, 처음에는 의자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대화를 나누던 둘은 여행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고 건물에 사진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간극을 좁혀 가는데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둘의 관계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런 그들의 우정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르다가 고다르를 만나기 위해 JR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자 바르다는 꽤 실망한다. 이내 둘은 호수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JR은 슬퍼하는 바르다를 위로하기 위해 평소에 벗지 않던 선글라스를 벗은 뒤, 바르다를 마주 보며 ‘난 뭘 할 수 있을까요? 무얼 해드릴까요?’라고 물으며 그녀를 위로한다. 곧 그들이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현실은 다시 그림으로 디졸브(Dissolve)되며 바르다와 JR이 그려낸 동화는 그렇게 마지막 장을 넘기지만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이 또 그들의 예술이 우리에게 새긴 가슴 따뜻한 여운을 한껏 만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