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채 Dec 05. 2021

성의있는 표현의 매력

<기획자의 독서>

 건축부터 영어 회화까지 여러 주제의 유투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유투버들이 운영하는 채널이라는 점이다. 한때는 나도 묘사나 표현을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자부했다. 고민 상담을 받는 친구들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니가 대신 말해주니까 속이 시원하다' 같은 말을 곧잘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업무 관련 주제가 아니면 생각이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지 않다' 정도로 심플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 세 개의 짤막한 문장을 축구 심판 카드처럼 돌려가며 내밀다 보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디테일이 점점 부족해지는 건 당연했다. 성의 없게 단어를 고르고 성의 없게 문장을 지어내고 있다는 걸 은중에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이유로 문장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채 풀리거나 다시 묶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아니면 다른 말을 가져다 써야 하는 건 아닌지 살펴보지도 않고 내던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유퀴즈온더블럭>으로 알게 된 최인아 책방에서 <기획자의 독서>라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며 표현에 성의를 담는 태도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깨달았다. 네이버 브랜드 기획자인 김도영님이 쓴 <기획자의 독서>는 제목에 충실한 책이었다. 책에는 저자가 책을 읽는 이유, 구조와 문제를 넘어 표지와 마케팅 방식까지 뜯어보는 이유와 방법, 독서에서 얻은 영감을 기획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 등이 쉽지만 가볍지 않은 표현으로 담겨있었다. 책을 모두 다 읽고 제목을 다시 봤을 때, '기획자의 독서'라는 제목 외에는 이 책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단어와 조사의 선택과 배열까지도 책의 내용을 꾹꾹 눌러 담기 위해 심사숙고한 결과물이라는 게 느껴졌다. 대충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꼭 이 제목이어야만 하는 책이라서 이런 표현을 썼구나 싶었달까.


 책 내용도 그랬다. 엄청나게 신박한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획자이자 독서하는 사람으로서 자기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제목 이상의 것을 담아 집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말을 고르고 고른 티가 났다. 얼굴도 모르는 저자의 성의가 글과 표현에서 느껴진다는 게 신기했고, 처음으로 책 앞에 겸손해졌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책을 쓴 저자의 태도를 곱씹기 위해 이 책은 침대맡에 두고 자주 펼쳐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성의 하나로 영감을 줄 수 있을 만큼 성의있게 살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브래드의 status는 바뀌지 않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