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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Dec 01. 2023

불안한 완벽주의자(=나)를 위한 책

완벽의 문제점은 어떤 것도 완벽하다고 보지 않는 데 있다.

 2023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무기력했고, 극도로 우울했고, 상처받았고, 속상했고, 나 자신이 싫었다.

요가를 하다가도 울었고 일요일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짓눌렸다.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으면서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자 머리가 맑아졌고, 내가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시 이 문제가 반복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 광고로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을 보게 됐고,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나를 위한 책이야!'탄성을 지르며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인생 바이블이 되었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은, 심리학부 교수이자 임상심리학 박사인 마이클 투히그와 불안장애 센터 연구원으로 강박장애와 완벽주의를 연구하는 클라리사 옹이 공동 집필한 저서다. 특히 클라리사 옹은 완벽주의로 삶이 휘둘려본 경험 때문에 실제 삶에서 완벽주의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처음 살펴볼 땐 목차를 먼저 보는데, 몇 백장에 걸쳐 늘어놓은 얘기 중 엑기스만 뽑아놓은 것이 목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다섯 개의 소제목에 가장 눈길이 갔다.


완벽주의, 언제나 지는 게임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착각
완벽하지 않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
자기 친절의 쓸모선택할 용기


 서서히 나를 잠식한 우울증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책과 유투브 강의 영상들을 열심히 찾아보던 시기였기에 표현이 낯설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위의 다섯 가지 표현이 내가 가진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모든 페이지가 핵심이었고, 인상깊었던 부분에 표시를 하다보니 대부분이 페이지가 접혀 있고 밑줄이 그어진 문장이 수 백개더라.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리뷰하기로 마음 먹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기엔 아쉽고, 길게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 책이야말로 꼭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책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해보려고 한다. 

 



완벽주의자가 책을 읽을 때

 이 책은 심리적 특징으로서의 완벽주의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독자가 각자 자신이 가진 완벽주의의 특징을 스스로 고민하게 하며 이를 메모장에 끄집어내고, 느껴보고, 관찰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한다. 사실 책을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책에 낙서하기는 싫은데, 메모장이 필요하겠구나'

'볼펜밖에 없는데 책에 볼펜으로 뭘 쓸 수는 없지'

'지금은 카페 테이블이 좁으니 집에 가서 책상에 앉아 제대로 읽어야겠다'


 그러면서 책장을 닫으려던 순간, 이런 문장이 나왔다.


어쩌면 당신은 이 책을 읽을 '완벽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돈으로 산 책이고, 이 타이밍에 책을 덮었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평소 고집대로 한다면 일면식도 없는 저자에게 한 방에 간파당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할 게 뻔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완벽주의, 불안함, 이런 게 내 문제라고 생각해서 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평소에 안하던 행동도 좀 해보자.'


 그 때부터 나는 책을 읽고 싶을 땐 어디서나 책을 펼쳐 들었고, 연필이든 볼펜이든 사용해서 밑줄도 긋고 서슴없이 메모도 남기며 책을 샅샅이 읽어갔다.




"완벽은 신기루다"
제1장 완벽주의, 언제나 지는 게임


책은 완벽주의를 하나의 게임(거래)라고 생각하고, 완벽하기 위해서 당신이 치른 대가(비용)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진다.


1. 게임을 위해 당신이 포기한 것은 무엇인가?

2. 게임에서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3.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4. 그 모든 전략들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이었나?


 위의 질문들에서 마지막 4번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완벽해지기 위해 했던 행동들 중 효율적인 행동이 있었나? 그간 해왔던 대부분의 수고로움은 우선 이 질문에서 NO로 걸러질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무언가를 해내는데 절대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하거나 물리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효율적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답이 YES라고 해도 '그게 진짜 완벽한 것이 맞는가?' ' 완벽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루니까.


완벽의 문제점은 어떤 것도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고 보는 데 있다.



 고3 9월 수능 모의 평가에서 도내 1등을 했을 때도, 스물 두 살에 올A+로 학과 수석을 했을 때도, 나는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건 실전이 아닌 '모의 평가'일 뿐이라며 내가 거둔 성적을 깎아내렸다. 학과 수석을 했을 때도 운이 좋았을 뿐이지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지표는 아니라며 시니컬하게 넘어갔다. 저자는 이런 유형의 완벽주의자를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라고 정의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
제2장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착각

 일상적으로 책에서 정의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같이 생각하며 살고 있었기에, 2장을 읽으면서는 스스로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스스로를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을 괴롭히고 불쌍하게 만들고 불편하게 하는게 나 였을 수도 있겠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이 시점부터는 다른 자기계발서를 대할 때와는 달리 최선을 다해 겸허하고 수용적인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부적응적 완벽주의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우울증 약을 끊고 나서도 내 삶의 주도권을 꽉 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정독하고 나니 실생활에 여러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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