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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Jun 27. 2021

립스틱 색깔을 정해주는 회사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지켜주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까?

 엄마는 오랜 시간 마트 캐셔로 일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라 엄마 손으로 마트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엄마가 3개월 만에 마트를 나온 적이 있다. 엄마가 퇴사를 결심한 건 손님이 없을 때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해서가 아니었다. 채소 다듬기나 물건 진열하기를 시켜서도 아니었다. 근로계약 당시 약속한 근무 일수와 시간을 사장이 제멋대로 줄였기 때문이었다. 주 5일, 일 8시간 근무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데, 사장은 일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주 3일, 밤늦은 시간에만 계산대를 지키라고 했다. 결국 엄마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영화 <카트>의 주인공 선희도 우리 엄마와 같은 마트 캐셔다. 벌점 없이 성실히 일해 정규직 전환을 목전에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동료들과 함께 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립스틱 색을 정해주고, 수당도 없이 초과 근무를 시켜도 묵묵히 일했던 그들에게 돌아온 건 고작 부당해고 통지였다. 이에 선희와 동료들은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간 받아온 부당한 대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갑질에 순종할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후 선희는 아들 태영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편의점 사장과 담판을 지어 아르바이트비를 받아낸다.



 마트 사장과 본사가 근로 계약을 위반할 때까지, 우리 엄마와 선희는 자신들이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까? 나는 차라리 그들이 알면서도 참고 견뎠기를 바란다. 더 무서운 건, 너무 오랜 시간 부당한 대우를 받아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히 선희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세상에 맞서 싸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가끔은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에게 최소한의 권리까지 떼어 놓으라고 부추기는 건 아닌지 한 발자국 떨어져 들여다보길 바란다. 낯설게 바라보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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