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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Sep 16. 2019

짧은 기록, 여운을 담다.

[단편 : Fragment] 00. Prologue

#1. 활자 정체기

글을 끝내지 못한 지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새로운 달에 들어서며 나는 활자를 읽기도, 쓰기도 버거운 약간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이번 달엔 책을 6권이나 샀다. 여러 권을 읽다가, 덮다가, 또 다시 펴길 반복하다 벌써, 유월의 끝을 본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책을 읽는 범위가 꽤나 넓었다. 주로 산문과 소설을 읽으면서도 여러 작가들을 읽어내곤 했는데, 어느 새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었고 자연히 책 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춰 엄선된, 좁은 범위의 책들만 읽어 나갔다. 오랫동안 보아온 작가들, 내 취향에 꼭 들어맞아 실망할 일이 없는 그런 작품들만을.


그렇게 잔뜩 좁아지고 추려진 독서 범위가 다시 넓어진 계기는 독립 출판물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처음 방문했던 독립 서점에서 독립출판물을 한 아름 사든 뒤로, 나는 책 사는 맛이 들려버렸다. 올해만 해도 매달 2-3권의 새 책을 만난다. 성질이 급해서 신간은 무조건 사야 하고, 책 읽는 속도도 제멋대로라 도서관을 간 건 오래 전이다. 자연히 책 사는데 드는 비용이 식비 뺨을 치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나는 작가들의 경계도 넓어졌다.


유월은 그렇게 책들의 바다를 탐닉하다 만난, 정체기였다. 어떤 책도 온전히 읽어 내기가 어려웠다. 더불어 어떤 글도 온전히 마무리 짓기 어려웠다. 가뭄에 콩 나듯 써낸 6월의 글 중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녀석은 하나뿐이다. 읽는 것도 마찬가지. 여러 작품들 이것 저것 동시에 읽다 보니 한 권을 끝내는 맛을 잊어버렸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들이 이리 저리 튀어나왔다.


글을 읽고, 또 쓰다 보면 문장을 보는 눈이 생긴다. 크게 반응은 두 가지다. ‘이 문장을 쓸 때 술술 잘 풀렸겠구나’ 혹은 ‘이건 안 나오는 문장을 마감 때문에 억지로 써냈구나’. 전자 보다는 후자의 문장들이 요즘 읽는 책들에서 많이 보였다. 의미가 없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활자의 나열. 그런 문장을 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글을 끝마치지 못하던, 의미 없는 활자만을 나열하던 6월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2. 단편을 읽는 법

단편 소설집을 읽는 건 늘 애매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헤르만 헤세와 김연수, 베른하르트 슐링크와 같은 작가들을 좋아했는데, 이 작가들의 작품에는 유난히 단편집이 많았다. 이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이 단편들을 잘 간직할 수 있을까?’ 단편 소설은 짧지만, 강렬하다. 한 편 한 편 음미할 때마다 여운이 길게 남는다. 하지만 여러 작품이 묶여 하나의 책을 이루기에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 또한 눈 여겨 보아야한다. 두 파편을 동시에 움켜쥐는 일, 나는 그 일이 늘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하나 하나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결국 답은 없었다. 하나하나 짚어 나갈 수 밖에. 하지만 의무감에 사로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방법은 읽는 만큼, 그 속도 그대로 온전히 간직하는 것. 그래서 단상이 남아있는 그 짧은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 그 뿐이다.


(01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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