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나의 책 『채소과일식의 반란』 북토크가 있는 날. 무언가 모를 기쁨이 가슴 속을 일렁이듯 차올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치를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과 마음을 깨우는 초록빛 주스를 갈아 마신 뒤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4시 50분, 수서역에 도착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내 7시 37분, 광주송정역에 내렸다. 광주는 낯선 땅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함 대신 푸근한 정취가 맴돌았다. 역사 안,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려왔다. 그 낯섦과 정겨움이 어우러진 묘한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9시에 약속이 있으니 아직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역사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TV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뉴스에서는 최근 계엄 관련 소식과 그에 연루된 이들의 행보를 전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화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에, 이 도시에 깊이 새겨진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광주분들에게 이 ‘계엄 소동’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다. TV를 바라보는 그들의 침묵 사이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은 마음의 울림과 소리 없는 저항이 느껴졌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내 마음 속 바람도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오래전 들었던 한 장면을 기억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가 촬영한 영상을 성당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조용히 숨죽이며 보던 우리 청년부들의 모습. 그 현장감과 긴장, 두려움 속에서도 울분을 품었던 순간들이 뇌리 속에 선명하다.
정치적 발언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아침 광주송정역에서 나와 같이 TV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을 보니,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굶주리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평화로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전부일 것이다.
오늘, 이렇게 잠시 짬이 난 시간에 이 글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 한 켠에는 소망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일을 맡은 이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만 급급하지 않고,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나는 하느님께 그 마음을 전하며 기도한다. 이 정겨운 낯섦의 도시 광주에서 시작된 새벽의 단상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북토크를 향해 역사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