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해보니, 이렇더라 - 2018년 9월 어느 신입승무원의 일기
2018년 9월 신입승무원의 일기
때는 바야흐로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콕은 승무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선 중 하나, 나는 방콕 비행을 손꼽아 기다렸고, 다른 팀에 조인한 막내 신분으로, 군기(?) 바짝 든 신입승무원 신분으로 행복하게 방콕으로 떠났다.
방콕에서 제일 좋아하는 팟타이도 먹고 마사지도 받으며 푹 쉰 후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비행길에 올랐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이제 이륙하겠습니다.
점프싯(승무원들이 이착륙 혹은 쉴 때 앉는 의자)에 앉아 레디포지션을 취한 채 비행기는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보통 약 3-5분 정도 지나면 "띵~띵~띵" 신호와 함께 벨트사인이 켜지거나 꺼지게 된다.
이제 안전하게 비행고도에 도달했다는 기장님의 신호.
승무원들은 이 신호를 듣고 그다음 서비스를 준비하게 된다.
근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이쯤이면 이제 신호가 들려야 하는데.. 비행기는 고요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비행기 내에 All Call이 울렸다. (보통 기장님이 모든 승무원들에게 비상상황임을 알리고자 동시다발적으로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 때 인터폰으로 올콜을 보낸다.)
"네, R2 땡땡땡입니다."
일제히 모든 존, 각자의 점프싯에 앉아있던 승무원들이 인터폰을 집어 들고 기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폰이 울리면 승무원들은 각자의 근무 위치(zone)와 이름을 말한다.)
"여러분, 지금 우리 비행기 노즈기어가 좀 이상해요.. 아무래도 다시 방콕으로 회항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승객들한테는 제가 방송을 할 테니 웍어라운드 (Walk-around: 기내를 돌아다니며 승객들을 살피는 일) 하면서 설명 잘해주고 저는 최대한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기장님"
인터폰을 놓자마자 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고작 비행 시작한 지 3개월 된 햇병아리 같은 신입승무원이었던 나는 순간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비행이라 눈을 붙이고 있었던 모든 승객들이 기장님의 방송이 나오던 그 순간부터 눈을 번쩍 뜨며 일제히 나를 쳐다보던, 떨리던 그 눈빛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아픈 환자들이 의사 선생님을 만날 때,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보내는 눈빛이 마치 이런 걸까..?
"저희 무사히 착륙할 수 있나요?" "괜찮을까요?"
웍어라운드를 하는 동안 승객들은 나를 붙잡고 묻고 또 물었다.
"네, 손님 괜찮을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당시 승객이었다면 겁에 질린 표정이었을 테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이 지어지더라..
참으로 신기하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이런 걸까?
모두 승무원인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겁에 질린 모습이면 승객들은 더 무서워하지 않을까?
사실 나도 정말 많이 떨고 있었다. 노즈기어에 이상이 있는 상태로 착륙을 해야 했기에. (비행기는 이착륙 시 사고가 제일 많이 날 수 있다고 한다. 아무 이상 없이 착륙해도 위험할 수 있는데 노즈기어에 이상이 있는 상태로 착륙이라니.. 무서울 수밖에)
애써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착륙을 앞두며 다시 점프싯에 앉았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괜찮을 거야, 무사할 거야... 제발요, 하느님 아버지.. 아멘' 속으로 이 말만을 되뇌며, 혹시나 비상착륙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려보았다. 음… 일단 점프 시 아래에 있는 메가폰을 들고, 프레쉬라이트 꺼내서 들고, 도어 개방하고 슬라이드 터뜨린 다음에 여기로 탈출하라고 샤우팅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 그전에 Brace for impact, 충격방지자세 외치고.. 하... @_@
비행기에 바퀴가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뷰잉 윈도(도어에 달린 외부를 관찰할 수 있는 조그맣고 동그란 창문)를 통해 반짝반짝한 활주로가 보였다. 이제 생사가 달린 결전의 순간이구나.. 바퀴가 땅에 닿았다.
그리고 비행기는 무사히 멈추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휴.. 우.. 살았다..
이륙한 지 30분 만에 다시 돌아온 방콕 수완나품 공항, 안전하게 무사히 착륙은 했다만, 사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기내 안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손님들은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여기저기에서 소리치고 돌아다니고 아주 난장판이었다.
기장님, 그리고 공항당국 및 한국 진에어 지점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우리 승무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승객들의 폭탄 같은 질문세례와 컴플레인 속에서 아직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 다음날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이고 손님, 어떡하죠.. 다음날 중요한 미팅이 있으신데.. 지금 이런 상황에 정말 난처하시겠어요... 저희도 어떻게 해아 할지.. 음 일단 지시를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매뉴얼에 맞게 그 사이 기내식과 물도 나누어 주었는데 하늘 위가 아닌 지상에서 기내식 카트를 끌며 서비스를 하니 그 느낌이 참으로 낯설더라..)
그렇게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이 지나갔다..
어둑어둑했던 공항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공항당국의 지시가 떨어졌다.
승객 승무원 모두 전원 하기
원래대로라면 한국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에 모든 승객과 승무원들은 한국이 아닌 방콕에 발을 디뎠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짐을 다 챙겨 비행기 밖으로 나가는데 정신이 참으로 몽롱하더라..
분명 어젯밤에 방콕을 떠나왔는데 아침에 또다시 난 방콕이네..?
호텔로 돌아가 기장님이 기내에서 몇 시간 동안 고생한 우리 승무원들을 위해 조식뷔페를 사주셨다.
그리고 음식을 담고 있는데, 사무장님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오시더니 해주신 말,
"땡땡씨, 너무 수고 많았어요.. 라인 올라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잘 해냈어요. 이런 일이 비행하면서 쉽게 있는 일이 아닌데 신입 때 겪고, 참..
대신 앞으로 비행 생활 오래오래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순간 눈물이 핑돌며 울컥했다.
그래서 오늘날 그날의 기억을 난 잊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 이례 없는 안전하고 편한 비행만 하면 너무 좋겠지만, 오히려 이런 극한의 경험을 해보았기에 지금까지도 하나의 추억거리로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있겠지.
그리고 이 날 이후로 신입 승무원, 비행한 지 고작 4개월 차에 난 어떤 비행을 해도 무섭지 않은 나만의 '비행 담력'이 생기게 되었고 극한의 컴플레인 속에서 승객들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몇 시간 사이에, 힘들었던 만큼 나는 그렇게 한 뼘 더 성장해 있었다.
너가 나와 박수를 치다니 ㅋㅋ 무사히 살아 돌아가서 정말 다행이야
뜬금없는 방콕 2박 3일 레이오버는 애도를 표하는 바야
마지막 I/B 까지 무사하고 안전하게 비행 잘하구
피곤하다고 머리 헝클어진채 추노 비행 하지 말자~
I/B 화이팅! 담에 애들하고 혜화에서 또 모이자~~!
P.S1 -> 선물은 없어
P.S2 -> 글씨를 못쓰는게 아니라 터뷸이 심해서...
P.S3 -> 단발이 낫다ㅋㅋ
*여기서 잠깐 ! 승무원 용어!
*박수를 치다 > 비행기가 목적지에 승객들을 내려주면 승무원도 같이 내린 후 그 돌아오는 비행을 위한 승무원들이 타게 된다. 이 때 서로 박수를 친다고 표현한다. (공항에서 비행기 내리고 탈때 같은 비행기를 공유할 승무원들끼리 마주치기도 하고 혹은 비행기가 먼저 도착한 경우에는 간혹 못 마주치기도 한다.)
*레이오버 > 해외 혹은 국내에서 스테이하는 경우를 칭한다.
*I/B > In-Bound의 약자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의미한다.
*터뷸 > 터뷸런스의 줄임말로, 비행기가 기류에 의해 흔들리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보니 메시지 참 웃기다 ㅎㅎ 이 때 단발머리에서 머리를 기를까 고민하던 시기였었나 보군...!
그리고 안전&서비스 교육때, 동기들 앞에서 데모 시연을 하다가 구명조끼에 머리가 다 걸려서 (단발 시절)
추노처럼 아주 산발+헝클어진 적이 있었다...그 모습을말하는 듯 하다!
2018년 9월, 1박이었던 방콕 비행은 2박이 되어 끝이 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아니 어쩌면 평생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거다. 그날의 나야, 정말 고생 많았었다! 그리고 함께 으쌰으쌰 했던 팀원들 그리고 무사히 방콕에 내려주신 기장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하늘 위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며 열심히 비행하고 있는 동료들, 모든 승무원들, 즐비안비!
즐거운 비행, 안전한 비행! Safe and Happy Flight!
그리고 한 달 뒤쯤, 비행을 갔는데 말이야...
그래 이 맛에 비행하지...비행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