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hole Sep 21. 2023

Detour 2. 회사를 옮길 수가 없어요.

'이직' 아니고 '이사'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각보다 깊고 넓은 세계가 펼쳐지는, 그런 분야가 엄청나게 많지요. 마치 식물 키우는 것처럼요. 처음에 그냥 다육식물 같은 작은 것을 키워볼까 하면서 알아보다가, 어느새 온실 용품을 알아보고 있고, 신기하게 생긴 잎사귀가 깜짝 놀랄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바로 부동산 얘기, 그중에서도 오피스 시장 얘기입니다. 처음에는 비록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시장인 줄 알았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제목이 어그로를 잔뜩 끌었지만, 부동산 얘기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SVB 파산 이후, 경제나 시장을 전망하는 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배드 시나리오의 원인으로 꼭 등장하는 것이 CRE(Commercial Real Estate), 상업용 부동산 문제입니다. 상업용 부동산이란 주거용, 즉 살려고 지은 건물을 빼고 전부다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얘기하는 대상은 주로 큰 것 들입니다. 대형호텔, 대형쇼핑몰, 또는 대규모 물류센터와 데이터센터, 그리고 오늘 얘기할 대상인 프라임 오피스라고 불리는 대형 오피스 빌딩 등이 대표적인 상업용 부동산의 큰 분류가 되겠네요. 실제 예를 들어보자면, 경기도권에서 종종 보이는 커다란 쿠팡 물류센터, 지난번 화재로 인해 통신 오류가 발생, 카카오가 곤욕을 치렀던 데이터 센터, 요즘 가장 핫한 곳인 더현대 여의도가 입점해 있는 파크원 빌딩,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옆으로 주욱 들어선 그랑서울을 비롯한 종로 일대 새로운 오피스 빌딩 등이 되겠네요.


 실제 필드에서 뛰시는 분들은 분류를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얘기할 내용은 그게 아니니 슬쩍 넘어가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후후.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에 미친 영항은 너무나도 많은데, '재택근무'라는 테크놀로지의 산물도 그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통신망의 발달과 클라우드 컴퓨팅, 단말기 성능의 비약적인 향상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제도인 재택근무는 업무 문화를 바꾼 하나의 트리거였지요. 사람들은 반드시 출근하지 않아도 직장생활이 가능함을 알아버렸습니다. 굳이 출퇴근 시간을 쓰거나,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이, 집에서 좀 더 편안하게,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근무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린 겁니다.


  더불어 정보통신 혁명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유튜버라는 신종 직업군도 만들어 내구요. 아이디어만 있다면 내 회사를 만들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지요. 이것 역시 정보통신의 혁명이 만들어 낸 변화라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여하튼 이런 변화들은 코로나로 인한 트라우마와 함께 내 삶을 보다 중요시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근로 시간 단축 요구와 '조용한 퇴사' 유행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변화로 인해 엔데믹으로 넘어간 후 사무실 복귀가 이루어졌지만,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특히 오피스 시장에게 이런 변화는 말 그대로 재양이었습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랜드마크와 같은 번쩍번쩍, 으리으리한 건물들의 공실이 채워지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 세계에서 이름 좀 날려봤다 싶은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어마어마했죠. 덕분에 이 지역의 집값도 엄청나게 올랐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조선소가 호황일 때, 거제도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던 것처럼요. 하지만 이게 올라도 너무 올라버려서 오히려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렌트비가 너무 올라 이사를 가고, 대학교수가 집이 없어서 차에서 잠을 자는 진풍경이 벌어졌지요.


  하지만 최근 이 지역,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변화는 여러 미디어에서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미국의 대형백화점 Nordstrom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위치한 매장을 폐점하고, 노숙자가 길을 차지하고 있지요. 꼭 경제적인 것만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을 겁니다. 우선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성장주의 대표주자들인 IT업계는 자금조달비용이 늘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IT 기업들이 미래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를 받는 곳들인데, 금리가 올라가면서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이 높아졌고, 수익 창출이 요구되는 시기도 당겨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금리 상승으로 렌트비는 상승했습니다. 빌딩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도 올라갔으니까요. 마지막으로 IT 기업 특성상 높아진 재택비율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흐름도 나타났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도 비싼데, 재택해도 되는 업종이니까요. 임대료도 아낄 겸 사무실을 줄이면 됩니다. 공실이 나타났네요.


  비단 샌프란시스코만의 일은 아닙니다. 전 세계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관련해서 주요 도시의 프라임 오피스 공실률 추이 그래프를 찾아보았습니다.

미국 주요 도시 공실률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무섭기까지 하네요. / 출처 : Savills
런던입니다. / 출처 : Cluttons
여기는 일본 도쿄입니다. 얘네는 제로금리 정책을 펼쳐서 렌트비는 내려갔네요. / 출처 : JAPAN PROPERTY CENTRAL K.K.
홍콩입니다. 여긴 홍콩 시위 이후로 계속 공실률이 올라가는 중입니다. / 출처 : Bloomberg




  그런데 신기한 곳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입니다. 2022년부터 부동산이 폭락했고, 덕분에 세수가 줄어들었으며, 이제 좀 반등을 하냐 마냐의 논란이 일고 있는 바로 여기 말이죠. 일단 그래프를 먼저 한번 보겠습니다.

으응?? / 출처 : Savills Korea


  그래프에서 나온 CBD(Central Business District)는 광화문 일대, GBD(Gangnam Business District)는 강남권, YBD(Yeouido Business District)는 여의도-마포 일대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이곳 프라임 오피스의 공실률이... 세상에. 0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글로벌이랑은 아예 반대로 가네요.


  2021년 코로나 때를 제외하고. 여의도에서 큰 건물이 많이 들어서면서 공실률이 튀어 오른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2015년 이후 서울의 주요 오피스는 계속 인기가 오르고 있네요. 심지어 지금은 말이 안 되는 수준에 공실률이 가 있습니다. 어디든 사무실이 이사하기 위해 잠시 뺀다거나, 신규 입주를 위해 인테리어를 진행하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있기에 0% 공실률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저 정도면 사실상 실질적인 공실 0이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서울 프라임급 오피스는 아예 건물이 다 지어지기 전에 이미 임대차 계약이 완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파트로 치면 준공되기 전에 전세계약까지 완료된 셈이네요. 서론에 언급한 것처럼,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하나는 우리나라 프라임 오피스 시장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서울에 한정될 요인 같은데, 바로 '사옥', 즉 헤드쿼터 공간에 대한 수요입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헤드쿼터는 대부분 서울, 그중에서도 주요 업무지구에 몰려있습니다. 일부 IT업체의 경우에는 판교 등지에도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서울 주요 업무지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위상,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등을 고려해 볼 때, 서울은 거래 가능한 오피스가 적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상당수가 프라임 오피스를 사옥으로 쓰고 있어서 매매로 나올 리가 없다고 하네요. 물론 해외에서도 프라임 오피스는 사옥으로 많이 쓴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기업이 본사 규모를 막 줄이고 이러는 케이스는 좀 적으니까요. 그래서 공실 자체는 변동이 적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 때문이라고 하네요. 요즘 재택근무라는 말은 많이 사라졌지요. 서구권 대비해서 직장인은 직장에 나와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평가를 좋게 주기 어려운 문화는 한동안 과거 대비 많이 변하긴 했지만, 사업이나 업무를 함에 있어서 네트워크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업무 형태도 해외는 이제 오픈스페이스형, 그러니까 정해진 자리가 없이 단말기를 연결해서 로그인하면 업무가 가능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아직 내 책상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죠. 이게 빠지면 월급은 없는 거니까요.


  그럼 아시아권은 다 비슷한 문화 아닌가 싶은데, 일본과 홍콩이 좀 다르네요. 홍콩은 홍콩 엑소더스라는 특수 요인이 있다고 하지만, 도쿄의 상황은 뭐가 다를까 싶네요. 적어도 서구권 같이 팬데믹 이후 크게 상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아시아의 문화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에 맞게 좀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오피스는 다 저런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프라임급에서 한발 물러서서 조금 이면도로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공실이 많다고 합니다. NPL이라고 하죠. 부실채권의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번 새마을금고 부실화 때 뉴스에서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여기에는 물론 주거용 건물 관련 채권도 포함되지만, 상업용 건물, 작은 규모의 오피스도 다 포함되니까요. 심지어 주요 업무지구의 이면도로 방면에서도 작은 오피스들의 공실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공급을 늘려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금리가 걸리네요. 일단 아무리 그래도 PF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물론 프라임 오피스 건축과 같은 확실한 사업장은 자금조달이 되겠지만, 금리가 높아서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이 높습니다. 높은 수익률은 사업주체에게는 리스크죠. 그 리스크를 감당하기엔 세상이 아직 뒤숭숭하네요. 물론 인허가의 문제도 있긴 합니다. 그런 큰 건물은 쉽게 인허가가 나지 않죠. 랜드마크급이면 도시계획과도 연관될 테니까요. 그 일례가 삼성동 한전 부지, GBC 개발 사업건 일 것 같습니다. 현대차 그룹에서 해당 부지를 2014년에 매입했으니, 벌써 9년째 완성이 안되었네요. 공급이 수요가 있다고 해서 팍팍 나올 수 있는 시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우리나라와 해외 선진국 오피스 시장의 극명한 온도 차이는 무엇을 시사할까요? 하나는 회사의 경쟁력 차이가 어떻게 나타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서구권의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문화랑 아시아, 특히 한국의, 직접 대면을 통해서 업무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문화 중에 누가 더 비즈니스 영역에서 나을까? 하는 문제로 결국은 귀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결론이 나면, 양쪽의 장점을 결합한 어떤 형태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메타버스가 추구할 방향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좀 더 짧은 관점에서 드는 생각은 역시 금융위기 가능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라임 오피스와 그 이하 등급 간의 양극화 현상이, 해외에서는 부동산 투자기관의 자금 회수 가능성과 공유 오피스 업체의 부실화 가능성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해외는 문제가 생각보다 심하네요. 근무 중인 사무실 빌딩의 한 20%에 해당하는 층이 아무도 없는 상태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주변 모든 빌딩이 그렇다고 한다면, 뭔가 을씨년스럽지 않을까요? 게다가 시장금리가 계속 높은 수준에서 머무르면 해외 금융기관 부실화 가능성이 일단 가장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 은행들의 주가 추이를 지켜보아야겠네요.




  아무래도 전문이 아닌 분야를 가지고 글을 쓰다 보니, 머릿속에서만 생각이 맴돌고 결론이 쉽게 나질 않네요. 역시 세상에는 살펴보면 넓고 깊은 세상이 너무 많습니다. 


  다음 글에서도 또 뵙겠습니다.


[표지그림 : Unsplash의 Sean Pollock 작품]

매거진의 이전글 Detour 1. 파업은 프롤로그일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