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뒤에 따라올 바로 그것.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파업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 3개 자동차 노조가 동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GM, 포드, 스텔란티스의 최종 조립라인이 일단 멈추고, 추후 협상 결과에 따라 확대될 수 있다고 합니다. 최종 조립라인이 멈춰서는 만큼, 재고가 소진되고 나면 추가적인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겠네요. 당연히 하청업체의 생산라인도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지지율이 고픈 바이든 행정부도 업계의 이익을 나눠야 한다고 압박에 나섰지요. 지난 대선 때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를 눌렀기에 당선될 수 있었음을 떠올려 본다면 기업 편을 들기 어려웠겠네요.
또 다른 파업 소식도 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파업이 한창입니다. 미국 작가조합과 더불어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도 동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임금인상이 원인입니다. 추가로 AI 관련 내용도 있네요. 다른 나라 파업 소식도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전문의가 50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을 진행했고, 지하철 노조도 파업을 했습니다. 호주 LNG 생산 공장 근로자들 역시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심지어 일본도 61년 만에 백화점 노조가 파업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바야흐로 파업의 시대입니다.
다양한 파업의 이유가 있습니다. AI로 인한 고용불안, 민영화 이슈 등등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파업 원인은 임금인상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네요. 작년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데, 임금이 별로 안 오른다면 눈 뜬 채로 돈을 뺏기는 일이니 행동에 나설 수밖에요. 저라도 불만이 생길 겁니다.
사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인플레이션 때 기업들은 가격인상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본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Price-Wage Spiral', 즉 전통적인 임금인상이 가격을 올리고, 가격 상승이 임금을 올리는 형태가 아닌, 'Price-Profit Spiral', 가격 상승이 이윤 확대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금리가 치솟고, 불확실성이 판을 치고, 눈 뜨면 새로운 기술이 튀어나오는 세상에 돈을 들고 있고 싶어질 겁니다. 조달비용도 높은데 금리보다 배당을 더 줘야 할 것이고, 신기술에 투자해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여하튼 파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만, 한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코로나 이후, 이렇게 전지구적인 파업 행렬이 나타났던 적이 있었나요?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파업이 일상이 유럽에서 몇 번씩 나타났던 적을 제외하곤 말이죠.
얼마 전까지 금융시장에서는 주요 선진국이 기준금리를 유래 없이 급하게 올리면서 돈줄을 꽉 죄는 와중에도, 너무나 뜨거운 고용시장은 최대의 수수께끼였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돈이 많았거든요. 미국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미국은 코로나 때 정부 지원금이 정말 크게 풀렸습니다. 코로나 기간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뿌린 돈이 약 5조 달러 규모입니다. 감도 안 오는 숫자네요. 간단히 1달러 당 1,000원이라고 계산해도, 5,000조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5천만 국민에게 1억 원씩 주는 사이즈였습니다. 그 돈을 다 소비한 게 아니라 저축하거나 투자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스닥이든, 부동산 가격이든 자산 가격도 올라버렸네요. 돈이 이렇게 풀렸는데, 안 오를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굳이 일하러 안 가도 모아둔 돈으로 살 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해버렸습니다. 코로나는 약해졌고, 지원금은 이제 다 끊겼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건값은 올랐습니다. 슬슬 일하러 가야죠. 하지만 아직 일할 사람이 적네요. 몸값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사람 못 뽑아서 고통을 겪어본 고용주들은 일단 얼마가 되었든 사람을 뽑고 봅니다. 임금도 그래도 잘 오르고 핫한 고용시장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고용주는 사람 뽑을만합니다. 임금 올린 건 더 쳐서 가격에 반영시키면 되니까요. 이런 국면이 당분간 이어지는 것이 고용시장의 수수께끼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생각보다 인플레이션이 오래가네요. 돈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듭니다. 이제 다 써버렸습니다. 일할 사람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동시에 고용시장도 조금씩 김이 빠지네요. 고용시장의 타이트함이 줄어드는 것이 최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임금 올려주는 것도 이제 별로 없습니다. 근데 인플레이션은 아직 계속 끈덕지게 붙어있네요. 인플레이션도 관성이 있습니다. 아직 수요는 있으니까요. 흠 그런데 임금은 이제 안 올려주네요. 이제 불만을 표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결국 파업은 고용시장의 타이트함이 풀렸다는 의미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 세계의 수많은 노동자가 전부다 탐욕스러운 노동자는 아닐 테니까요. 문제는 고용시장의 타이트함이 풀린다는 것은 실업률이 빠르게 상승하기 위한 전조현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풍선 입구에 박혀있던 돌이 빠지면서, 풍선이 쪼그라드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요. 이론적으로는 노동시장의 타이트함이 낮아질수록, 노동 공급곡선의 기울기가 변하면서 실업률의 증가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업률의 빠른 확대는 생각보다 급격한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고, 기대보다 더 크게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을 던져주지 않을까요.
지금은 전 세계가 눈을 들어 미국만 쳐다보는 중이나 미국 고용을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곳도 다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중국과 그 영향권 하에 있는 나라(예를 들면 대한민국)들만 빼고요. 일본은 다른 의미에서 빼고 싶네요.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일념을 엔화와 함께 불태우는 곳의 얘기는 다음에 또 해보시죠.
파업으로 인해서 불편한 건 불편한 거지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고용시장의 변화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들 기대하고 있는, 은근하게 뜨뜻하고 길게 가는 골디락스 경제가 과연 지속될 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 보고 싶기도 했고요. 모두가 그렇게 기대하면, 또 그렇게 잘 가지만은 않는 것이 세상사이지 않겠습니까.
다음 글로 또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표지그림 : Unsplash의 Claudio Schwarz 작품]
여름 즈음에 썼던, 지금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한 글입니다. 그런데 글 말미에 제가 가격인상으로 생긴 이익의 분배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썼네요. 나름 맞게 본 것 같아 괜히 으쓱합니다.
저 위에 언급한 Profit-Price Spiral에 대한 개념을 조금 적어 두었으니, 관심 있으시면 한번 읽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utopuild/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