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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hole Nov 15. 2023

투자도 망쳐도 되고, 시험도 망쳐도 됩니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죠? 단언컨대 아닙니다.

  바야흐로 수능시험 때가 돌아왔다. 날씨는 어찌나 정확한지, 수능 때만 되면 날씨는 기가 막히게 추워진다. 주변에 수능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괜히 부정탈라 예민해지고, 그들에게 안 좋은 얘기를 안 하기 위해서 주변 동료들도 신경을 쓰게 된다. 


  주변 사람들뿐이랴. 국가적인 배려가 이뤄진다. 행여나 방해될까 듣기 평가가 이뤄질 시간에 항공기 운항도 금지하고, 혹여나 시험장 가는데 방해될까 봐 출근시간도 조정된다.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와서 거래하는 금융시장 역시 1시간 늦은 10시부터 개장한다.


  이 모든 것이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인 수능 시험을 방해 없이 집중해서 잘 보라고 이뤄지는 조치들이다. 즉, 대학을 잘 가야 인생이 잘 풀리니, 시험을 꼭 잘 보라는 의미가 깔려있는 것 같다. 그만큼 중요한 이 수능시험, 망치면 안 될 것 같은 인생의 스타트 같은 느낌이다.




  펀드를 새로 맡게 되었을 때, 아니면 대규모 추가 자금이 펀드로 들어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포지션'이다. 처음에 포지션을 잘 잡아두면 세상 마음이 편하다. 처음을 잘 시작해서 수익을 확보하면 이를 버퍼로 활용해서 보다 과감하고, 보다 쉽게 다음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다. 수익이 확보되었으면, 적정 수준에서 이익을 실현한다. 그리고 시장에 약간의 오버액션이 나오면 반대 포지션을 잡는다. 수익이 확보되었으니 반드시 포지션을 잡은 뒤에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바로 수익을 또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기분 좋은 시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심 차게 처음 자금을 받자마자 망하는 케이스도 부지기수이다. 특히 요즘같이 변동성이 심한 때에는 신규로 들어오는 자금 자체가 고민이다. 추가로 펀드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온다면, 애지중지 가꿔온 펀드 수익률이 불청객 같은 자금 때문에 다칠까 노심초사가 된다. 심지어 차라리 나중에 좀 하지라는 전혀 프로답지 않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정말로 처음을 망쳐버리면 이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초반의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최후의 한방과 같은 타이밍을 노리게 된다. One shot, one oppotunity. 그게 지금 일지, 내일일지 몰라서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고, 무리해서 포지션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대부분 끝이 좋지 않다.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것을 매니저라면 누구나 알기에, 마치 초반 손실을 개의치 않는 양, 운용을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럼 그렇게 안 좋은 시작을 한 펀드는 그냥 망한 걸까? 운용하지 않아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짜 그렇다면 나와있는 펀드의 대부분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지금 당장은 오늘의 손실이 커 보이고, 다시는 돌릴 수 없는 내상을 입은 것 같다. 하지만, 딱 한 달만 지나고 보면, 실제 수익률의 복구 여부와 관계없이 복구해 낼 수 있었던 기회가 분명히 존재한다. 두려움을 견디고 용기를 내서 바라보면 할 수 있었던 기회들이 꼭 나타난다. 그게 지금 뿐이랴. 앞으로 한 달, 한 분기, 한 해 동안 계속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터진 2020년 시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S&P500 지수는 6개월 만에 터지기 전으로 돌아와 버렸고, 심지어 가장 하락폭이 컸던 2020년 3월 하락폭은 다음 달에 돌렸다.   이런 사실을 업계에서 아등바등거리다 보니 알게 되어 버렸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WTI가 배럴당 100불을 순식간에 뚫고 올라갔지만, 약 5개월 뒤에는 다시는 100불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이런 예는 정말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시작이 안 좋아도 펀드를 잘 운용하게 되는 것은 나중에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끊임없이 기회를 기다리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가까운 동료 펀드 매니저가 있다.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시장에 있기에 종종 만나서 희로애락을 나누다 보니 가까워진 친구이다. 그 친구 밑으로 아끼던 후배 한 명이 이직을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 후배와 만나 얘기를 나누던 차에 그 친구에 대한 놀라운 점을 알려주었다. 사실 새롭고 임팩트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들을수록 왜 그 친구가 업계 최상위권 매니저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XX님은 무슨 부처님 같아요. 아니 그렇게 수익이 나빠져도 무슨 표정도 하나 안 변해요. 전 그럼 사람 처음 봤어요. 그리고 잘 되어도 똑같아요. 그냥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똑같아요 똑같아.




  수능을 잘 보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까마득한 옛 일이지만, 그때의 긴장감을 생각하면 갑자기 피곤해진다. 그래서 내일의 시험을 볼 수험생들에게 살짝 긴장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해주는 것은 맞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로, 진짜로, 진심으로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수능시험은 그냥 시작점을 골라보는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그 결과에 따라 보다 수월한 스테이지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보다 난이도 있는 스테이지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근데 그게 어떻다는 건가. 어차피 살면서 타야 할 테크트리가 요구하는 것들은 공통점이 있다. 어떤 스테이지에서 시작하던, 필요한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운 스테이지에서는 통과만 잘하면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혹은 거기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도 숨겨져 있다.


  어느 펀드 매니저가 있다고 하자. 실제 현장에는 소위 SKY를 나오지 않은 펀드 매니저들도 많다. 지난 글에서도 썼지만, 펀드 매니저와 거래를 해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는 브로커 중에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수두룩하다. 대학에 입학할 때야 출발점이 달랐다고 하지만, 시장에서 만난 이상 실력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대우와 태도가 달라진다. 이런 미래를 수능시험을 치렀던 그날에 그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브로커가 마냥 '을'인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한 크나큰 착각이다. 뛰어난 브로커가 한 해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을 알게 되면 매니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형이다. 증권사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글을 보든, 보지 않든 내일 모든 수험생에게 각자의 노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한다. 정말로, 진심으로, 진짜로 삶은 길고, 인생은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복구할 수 있는 기회, 다시 일어설 찬스는 꼭 있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무리고, 보고 난 뒤에 꼭 말해주자.

망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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