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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람 Nov 16. 2024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전시를 보러 갔었다. 사람이 많아 온전히 다 누리지 못한 채 빠르게 걷다가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공간을 발견하여 한동안 머물러있었다. 어두운 공간 속, 벽을 가득 채운 3면은 나무 그림자, 빛, 반짝이고 있는 물결 등이 담긴 사진으로 천천히 바뀌었다. 방석을 찾아 앉았다. 웅성이며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너머로 옅은 음악 소리, 개짖는 소리, 어린 아이의 말소리 등이 들리기 시작했다. 공간 속 배경이 되어주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제서야 마음이 차분해지며 그 순간에 머무르고 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순간 순간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다가 인식이 떠오를 때면 노트를 꺼내어 조각조각의 기록을 남겼다. 가깝기만 하다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곳에 자주,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 때의 기록 중 하나를 옮겨본다.


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경험을 하는 것, 그 때 느낀 감정, 분위기
그 모든 것은 어딘가에 남는다.
그것들이 결국 한 사람을 구성한다.



이미 나이가 많아서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최근 자주 듣고는 한다. "이 나이 들어서 뭐가 될 것도 아닌데, 해보고 싶은 것을 해서 뭘하나 싶기도 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뭐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해보면 좋을텐데. 오히려 나이가 들었기에 스스로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삶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설사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한 개인의 삶에서는 작심삼일만큼의 가치만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원했지만 실제로는 잘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좋았지만 상황적으로 잘 안 됐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불현듯 '그 때 그 경험 정말 좋았었는데 -' 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우리 안에 남아있다. 굉장히 단편적인 경험이라 할 지라도 그 모든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경험을 할 때 느꼈던 감정, 생각, 느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억한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표정, 생각, 분위기, 삶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 순간이 정말 좋아서 남겼던 기록.
그런 순간을 더 많이 살고 싶어서 남겼던 기록.

그렇기에 나는
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로 삶을 채우고 싶다.
순간 순간을 잘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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