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작가라는 꿈을 이룬 그녀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백세희 작가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진 이유
내가 호주에 온 이유는 무기력과 우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아니 최소한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호주에 온 뒤 더 명료해진 건, 내가 결국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혹은 경제적으로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살더라도 ‘평생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마음을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예전엔 내가 부자가 되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혹은 성격이 더 밝아지면(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햇살 좋은 공원에서, 여유로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던 호주의 브리즈번에서도,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음에도 종종 이유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행복이란 완주만 하면 끝나는 마라톤 같은 것이 아니어서, 특정 조건을 이룸에서 오는 행복을 좇기보단 작은 기쁨을 느끼는 힘을 길러야 한다곤 하지만, 각자 사람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내가 원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세상에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고, 또 부러웠다. 그래서 백세희 작가님의 경우, ‘베스트셀러’라는 목표를 이뤘으니 책 속에서 담겼던 그런 종류의 불안감이 이후엔 덜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심 있었다.
그래서 갑작스런 작가의 부고 소식이 나에게 불안감을 안겨다 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고 해서 내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내 고민이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경험이나 생각이 나와 어느 정도로 비슷한지, 그 흔적을 찾아 구석구석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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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희 작가의 죽음이 가진 의미
작가의 부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예전에 그녀의 메세지를 ‘패션 우울증’이라며 조롱하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문장을 가볍게 소비하던 이들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그 우울이 결코 ‘가벼운 기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누군기에겐 가볍게 보일 수 있는 그 문장이 실제로 매일 살아내야 했던 절박한 고백이었다는 걸 이제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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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책의 내용 자체가 정말 나에게 정말 큰 울림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좀 더 결론이 명확한 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에세이를 잘 읽진 않는다.) 하지만 백세희 작가의 책은 기분부전장애라는 병명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존재는 되기 쉽지만, 그 반대의 존재가 되기 위해선 사회적 비난이란 저항력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에세이는 작가의 주관적 경험이 들어가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책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마치 누구에게나 정말 맛있고 완벽한 레스토랑은 없는 것처럼.
하지만 작가가 책의 첫 머리에서 말했듯 ' 나 여기에 있어' 당신과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겪는 사람은 많다는 사실 하나만 전해지더라도, 이미 그 책이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 나는 이 책을 읽고 오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졌을까. 이 건조하고 삭막한 한국 사회에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준 당신의 발자취가, 움직임은 정말로 이 세상에 큰 힘이 되었다고. 그런 말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위로를 부디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故백세희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