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을 때
호주에서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에서 카페 알바 조차도 해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었다. 외국인으로서 고용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려면 무엇이라도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했다.
브리즈번에서 바리스타 과외를 한 번 받은 후, 그 뒤로 바로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호주의 한 시골에 있는 스시집으로 일하러 가게 되면서 바리스타에 대한 도전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던 중 맬버른으로 지역이동을 하고 난 뒤 비스트로와 바가 함께 있는 펍에서 홀 스텝으로 일하게 되었다.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너무 좋았지만 점심과 저녁 사이에 2시간 반이나 브레이크가 있어서 하루를 통으로 써도 실질적인 근무 시간은 6시간 밖에 안됐다. 그만 두기엔 이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아서, 펍 일을 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바리스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행이도 펍에서 커피도 팔아서 간단한 머신으로 커피도 만들면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리스타를, 그것도 '맬버른'에서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래서 커피 제조 외의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카페 올라운더라는 명목으로 맬버른 바리스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대부분 진짜 '아트' 수준인 라떼아트를 올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내 소개 중심으로 글을 올렸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건지 바리스타 혹은 바리스타 올라운더를 문의하는 DM이 많이 왔다. 처음엔 거절을 하다가, 트라이얼을 커피 연습을 하러 간다고 마음을 바꾸면서 두 카페에 트라이얼을 하러 갔다.
아주 오랜 만에 느껴지는 떨림이 있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트라이얼은 정말 많은 배움이 있었다. 카페마다 사용하는 머신, 포스기도 다 다르고, 빠르게 헤드바리스타를 도와 삿을 내리기도 했다. 두번째 카페는 맬번 시티의 한 오피스 빌딩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머신부터 커피 제조법까지 매우 전문적인 카페였다.
그곳에서 만난 바리스타 A는 커피스킬부터 에티튜드까지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트라이얼을 했던 15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짧지만 강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오랜 만에,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비록 트라이얼이지만 보통 트라이얼을 가게 되면 간단하게 머신이나 커피제조법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 그곳에서 만든 라떼 2개는 망쳤버렸지만, 맬버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을 그녀에게 배우는 시간은 마치 전문과외를 받는 것처럼 즐겁고 값진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일만 고집하면서 살아도될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으고 싶다. 내가 하고싶은 커리어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다. 그럼 유학을 빨리 가야하고, 그러려면 학비를 빨리 모아야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혼자만 발전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시프트 걱정없이 정말 돈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공장에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혹은 요리를 하는 게 낫다. 그럼에도 굳이 홀스텝을 고집한 이유는 나는 사람들을 직접 응대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일에서 즐거움이 없는 것만큼 내게 고통스러운 건 없는 것 같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을 꾸준히 못한 적도 많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일을 일로서 하는데, 왜 난 항상 자아실현과 연결시켜 인생을 고달프게 할까 줄곧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난 정말 인생에서 낙이라는 게 없는 사람같다. 취미도 없고 영화를 엄청 좋아하지도 않고, 스포츠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거나 액티비티를 또 엄청 즐기지도 않는다. 청소와 요리를 좋아하지만 정말 큰 즐거움까진 아니다.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고, 함께 있어도 편하고 재밌는 친구도 없다.
살아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외에, 오직 일에서만 오는 순수한 기쁨이 있었다.
내가 누구보다 일에 정말 흥미가 많고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빨리 학교에 가서 해외취업을 빨리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하는 일에서 조차도 즐거움을 찾아버리니 갈등이 있다. 사실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하지만 어제 트라이얼을 통해 느껴지는 두근 거림은, 나이가 들면 들어갈수록 마음에 반짝이는 걸 지키기가 어렵다는 걸 알아갈수록, 흔치 않은 기회임을 알기에 더욱 망설여진다.
오늘은 펍에서 커피 주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드디어 라떼를 한 번 만들수있었다. 그나마 하트라고 좀 봐줄수있는 아트가 나왔다. 하프 샷이었는데 흥분해서 만들다 실수로 원샷으로 만들어서 결국 다시 만들어 나갔고, 내가 만든 건 한 번 맛보고 버렸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트쪽 밀크 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내 입을 감쌌다. 커피가 예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바리스타로 일하긴 어렵겠지만, 커피는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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