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아(吾喪我) : 내가 나를 장례 치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1년을 주기적으로 한 번 씩 그 생각이 찾아왔다. 어떤 것을 해도 어떤 경험을 해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단 '공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상아' 내가 나 자신을 장례치른다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상아'란 동양철학의 한 사상으로, 원래 가지고 있던 나를 스스로 장례치뤄둔 뒤 새로운 나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신경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님은, 이 개념을 차용해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고도 지금의 삶을 끝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다.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서,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누군가는 긴 휴식을 갖기 위해, 누군가는 삶의 기반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등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저 생각만 멈추었던 '인생 리셋하기'를 실행해보고자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내 인생이 밑그림이 잘못 그려진 한 장의 도화지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가 아닌 내가 어쩔 수 없는 다른 사람에 의해 마구 그려진 밑그림들 위에서 나는 어떻게든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려내야만 했다.
처음에는 밑그림이야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건 본 그림이 아닌 스케치에 불과하니까. 그 위에 나만의 물감을, 나만의 선을 남긴다면 분명히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첫 단추를 잘 못 끼었다는 말처럼, 밑그림은 선명히 남아 새 물감과 선으로 덮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꾹꾹 눌러 그려진 그 밑그림들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온 '밑그림'에 대한 비유는 바로 인간관계이다. 사람이란 무릇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과 사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사람에 대한 경험이 인생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어렸을 때의 경험이 나의 인간관계관, 인간관계를 맺는 스타일 등 대부분을 결정 지었고, '나'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이 경험을 토대로 구성되어 버렸다. 십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려고 노력했고, 밑그림이야 과거일뿐이라며 레일 위에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보려던 몸부림이었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은 살아가기엔 너무나 위험하고, 뭔가를 바꾸기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존재론적 고민이 '고독감'에서 온다고 느꼈다.
그 누구로부터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슬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에 충분할 만큼이었다. 그래서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1. 이름을 바꿀 수 있다.
법적으로, 타인에 의해 정의된 이름 석자 대신 스스로 이름을 지어 살아갈 수 있다. 내 외국인 친구 대부분은 내 한국 이름을 사용할 것을 권했었다. 부르기 쉽고 고유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하나의 또다른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영어 이름을 지었다. 나디아 Nadia.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도, 행정처리에 수월한 스펠링을 찾다 이 이름을 선택했다.
이제 나를 한국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디아로 불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2.사람을 바꿀 수 있다.
친구, 가족은 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3.사는 곳을 바꿀 수 있다.
한국과는 아예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원한다면 1, 2년 정도의 임시가 아닌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미래를 설계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이민이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세계적 불경기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이민'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니 당신도 그 흐름 속에 합류할 수 있다.
4.성격을 바꿀 수 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위해 좀더 사회적인 성격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