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인숙백 브리지
백인숙 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위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마운틴뷰에 있는 쉘 주유소의 주인인 그녀는 지역사회에 따뜻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러한 이웃들을 위해 매년 햄, 칠면조, 옥수수, 으깬 감자, 스터핑, 호박 파이를 동네 전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해오고 있었다.
이 매장의 매니저인 글렌 엘리스 씨는 아내와 함께 음식 준비를 돕고 있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1년에도 약 4일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근처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몇 명이 추수감사절 당일에 접시를 설거지하고 창문이나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엘리스 씨에 따르면 해가 지날수록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도 900인분이 넘는 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상황이 어려웠고 지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밀린 청구서 때문에 더더욱 힘든 상황이라 따뜻한 추수감사절 한 끼는 너무나도 그들에게 소중하고 따뜻하지 않았을까 싶다.
몇 년 전 한 남성이 직업도, 차도, 아파트도 없이 배가 고파 우연히 이곳에 왔는데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남자는 다시 찾아와 이젠 일자리가 생겼고 살 곳도 생겼다고 백인숙 씨에게 말하고 그때의 소중한 한 끼를 보답하고자 내년도 행사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돈을 보태고 떠나갔다고 한다. 선행이 선행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한 단골 고객은 색소폰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와 주방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캐럴을 연주해 준다. 백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백인숙 씨는 밖으로 나와 눈밭으로 나가 한 남성이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창구 줄로 안내해 드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창문 옆으로 걸어가 따뜻한 음식 봉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분주히 건네주고 있다.
"즐거운 추수감사절 되세요." 마스크로 미소를 가렸지만 따듯한 마음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인숙백 브리지'(Insook Baik Bridge)는 1981년부터 앵커리지시에 사는 백인숙(71) 씨의 이름을 땄다. 전장 235m의 이 다리는 2008년 6차선으로 건립됐고 이름이 없던 다리였다. 마운틴뷰 구역과 브라가우 구역을 잇는 글렌 하이웨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다리 이름의 명명은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2년 게란 타르 주 하원의원의 법안(HB 359) 발의로 시작됐다. 이후 조시 레바크 주 상원의원이 이 법안을 'SB 203'에 추가했고, TV 생중계 등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상원까지 통과됐다. 앵커리지시는 6,700달러를 들여 간판을 부착하고 이름이 없던 이 다리의 이름을 '인숙백 브리지'(Insook Baik Bridge)라고 명명했다.
다리 이름의 주인공 백인숙 씨는 부산 출신으로 1980년 미국 뉴욕에 이민했다가 이듬해 앵커리지로 이주했다. 이후 앵커리지 시민으로, 이곳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그는 한국전쟁 때 한국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힘들게 미국에 왔지만 열심히 일해 주유소를 여러 개 소유하고 있으며, 매년 추수감사절에 푸드 트럭을 운영해 지역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음식을 무료로 나눠줘 왔고 또한 그 일을 10년 이상 해 오면서 지역사회에 정과 나눔을 몸소 실천해 오고 있다.
시에서 본인의 이름을 다리에 붙이겠다고 연락 왔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부담스럽게 다리에 이름을 붙이느냐.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하라고" 사양했더니 계속 설득을 했다고 한다. 결국 아들이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니 그렇게 하시라"라고 제안을 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제는 앵커리지에서는 아주 중요한 다리에 이름이 붙어서 기분이 내심 뿌듯하다며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직항 비행기가 없던 시절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미국에 와야 할 때 많은 한인들이 이 척박한 땅 앵커리지에 많이 정착을 했다. 한때 한인인구가 몇 만 명이 될 정도로 발전도 됐지만 대형 제트비행기의 개발로 서울에서 뉴욕까지도 논스톱으로 갈 수 있게 된 지금 앨라스카의 가장 큰 도시 앵커리지의 한인인구는 이제 4천 명 남짓 남아 있다고 한다.
유달리 척박하고 한인들 보기도 힘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백인숙 씨이지만 그러했기 때문에 더더욱 주변 주민들과의 정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다리, 누구는 다리의 이름을 볼 것이고 누구는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앞으로도 주민들에게 기억될 것이고 또 다른 선행도 나눔도 계속되는 이민야사(移民野史)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