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Jan 12. 2021

고양이 알레르기 검사를 받다

당신은 고양이를 반려할 수 없습니다

임시보호처에서 고양이 알레르기 반응을 겪은 이후, 알레르기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사실 입양 신청을 하기 전에 받았어야 하는 검사인데, 나는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20대 초반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저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 카페를 드나든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가지 않는다) 그때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물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 흔한 땅콩 알레르기나 달걀 알레르기, 복숭아 알레르기 등등 어떤 알레르기 반응도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고양이 알레르기처럼 특이한 알레르기가 내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알레르기 검사를 받기까지 갈등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말로 알레르기 반응이 나오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그건 내게 ‘당신은 평생 가족을 만들 수 없습니다’라는 선고와도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선고였다. 일단 인터넷에 ‘고양이 알레르기’를 검색해보았다. 막연하게 ‘특이한 알레르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고양이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르고 데려왔다가 눈물 콧물을 쏙 빼거나, 심할 경우 호흡 곤란까지 와서 결국은 파양이라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결말이 많았다.


나는 무서워졌다. 파양만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입양에 신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검사를 받기로 마음먹고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알레르기 검사는 피부과, 이비인후과에서 할 수 있는데 이비인후과에서 하는 피검사가 좀 더 정확하다고 하여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알기까지는 3일 정도가 걸렸다. 결과는 고양이 알레르기 4 class. 고양이를 반려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안 보였다. 일단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고양이 입양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없는 방법이 갑자기 보일 리 없었다. 결국은 포기밖에 길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임시보호처에 ‘죄송하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고양이를 입양하지 못할 것 같다.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임시보호처에 들러서 인터뷰를 하고 나서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많다고 들어서, 내가 무책임하게 보일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덜컥 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더 무책임한 일 같았다. 돌아온 답은 싸늘했다.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포기하시다니 실망이 크네요.’


그렇게 나는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하고 1년이 흘렀다.


1년이면 고양이 사랑도 좀 수그러들만 한데, 도무지 그러질 않았다. 고양이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고양이 알레르기 검사를 한번 더 받아보기로 했다. 혹시, 혹시라도 단계가 한 단계라도 내려갔다면 매일매일 항히스타민제를 먹어가면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아서 피검사를 받았다.


내가 받은 검사는 MAST 알레르기 검사로, 피검사 한 번으로 93가지 종류의 알레르기 반응을 검사할 수 있다. 나는 총 네 가지 항원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다. 집먼지 진드기 두 가지 종류와 수중다리가루진드기라는 이름도 어마 무시한 진드기에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세 가지 모두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수치가 0.3, 3.5 정도로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계절이 바뀌어 옷장 정리를 할 때 재채기가 나오는 정도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내 고양이 알레르기 수치는 59.63으로, 단계로 치자면 총 6 class 중에 5 class. 즉, ‘위험’ 수준이었다. 의사는 ‘이보나 씨는 고양이를 반려할 수 없는 몸입니다’라고 선고했다. 신이 야속했다. 흔한 호두, 계란, 복숭아 등에도 알레르기 수치가 0이고, 심지어 개, 말, 기니피그, 양, 토끼, 햄스터 모두 0인데 유독 고양이에게만 폭발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1년 전엔 4 class였는데, 이번엔 5 class가 되어 있었다. 의사는 단호하게 ‘키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게 끝난 느낌이었다.


내 인생 계획에 가족은 고양이밖에 없는데. 어째서 신은 그거 하나마저 허락해주시지 않는 걸까.

나는 매일 일기에 신을 원망했다. 신은 없다고. 있으면 나에게 이럴 순 없다고. 그러고서는 없는 신을 또 원망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첫째의 이름은 라라, 둘째의 이름은 모모다.

라라는 지금 침대 아래에서 식빵을 굽고 있고 모모는 침대 위에서 글 쓰는 내 옆을 기웃거리고 있다.

나는 가끔 재채기를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은 심각하지 않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5 class의 고양이 알레르기를 극복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