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오랫만에 방문한 장소로 떠오르는 것들
어제 꿈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했던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추억은 노래, 단어, 장소, 음식, 심지어 계절이 다가올 때 느껴지는 냄새에도 쉽게 소환된다. 손대면 톡 하고 터져 나오는 아주 작고 사소한 자극에도 순식간에 소환되는 추억들 속에 살다 보면, 사람의 구성성분은 대부분이 물이 아니라 추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위해 외장하드에 그간 일하며 쌓인 자료들을 백업하며 겸사겸사 기존 자료들의 폴더를 정리하던 중 별안간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했다. 그 폴더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나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삭제하지 못했던 5년의 길었던 연애의 흔적도 담겨있었다.
20대의 첫 연애가 끝났을 땐, 혹여나 무방비 상태에서 발견할 나와 상대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미련 없이 지웠었다. 정확히는 함께 찍었던 사진을 포함하여 함께 갔던 여행지, 맛집 등 그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얽혀있는 모든 추억을 남긴 사진들을 지웠다. 그땐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빨리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할까 하지 말까 고민될 땐 하자, 안 해서 남는 후회가 더 오래 남는다!는 주의라 이때까지 해왔던 결정들에 대해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때 했던 결정은 조금은 후회스럽다. '사진'은 인간의 뇌로는 기억할 수 없는 것들까지 기억하고, 추억하도록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장치이다. 그때 당시 나는 그 사진을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때 나의 20살을 떠올려줄 수 있는 장치'가 아니라, '나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없애버려야 하는 흔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그 사진에는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그 친구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함께했고 앞으로도 평생 함께해야 하는 내가 담겨있는데,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상대를 지우는 데에만 급급해서 그 안에 남아있던 나까지 모두 지워버렸다. 때문에 내 사진첩에선 중간중간 큰 구멍이 몇 개 있다.
아직 남아있는 5년의 흔적을 보며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일단 양이 너무 많았고(5년이니까), 똑바로 마주하기엔 무서워 지우지도, 남기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마주할 수 있는 지금 발견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특히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엄마'와의 사진들이었다. 평소 엄마와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셀카로 찍거나, 서로를 찍어준 사진들이 전부라 함께 찍은 마땅한 사진이 없었는데 판도라의 상자 속에 그 사진들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찍은, 여행 속에서 웃고 있는 우리가 담긴 사진이.
쉽게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특히, 지극히 사적 영역인 연애가 가장 그렇다. 누군가는 이전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과거의 사진을 남기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사진은 최대한 남겨두고 싶다.
과거를 잊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나'를 추억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