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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 Dec 04. 2022

다시 한번 마케터에서 PM으로

스타트업에서 3차 전직하기


사는 게 참 어려워졌다. 금리가 점점 오르고 회사의 (특히 스타트업이) 투자금액이 줄어들면서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회사들이 늘어났고, 결국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건 구성원들이 되었다.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말, 새로운 서비스로 투자를 받고, 후속 투자유치를 위해 전 인원이 열심히 달렸지만 스타트업 혹한기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결국 회사는 규모를 축소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케팅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팀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축소 결정이 되기 전, A회사의 입사 전형을 진행 중이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직을 할 수 있었지만 회사의 하향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정말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회사에서 잘려도 괜찮아 암오케




이직 과정도 마냥 수월하진 않았었다. 전형을 진행 중이던 포지션은 마케터가 아닌 PM 포지션이었는데, 이미 조리사에서 마케터로 커리어를 바꾼 경험이 있었기에 마케터에서 기획자로 또다시 커리어 전환을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10년을 꾸준히 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데, 6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직무를 또다시 시작한다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닐까? 이미 직무를 바꾼 적이 있는 나를, 경력과 다른 직무로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이러한 걱정들은 A 회사와의 인터뷰를 준비해야 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히려 2차 인터뷰 자리에서 받았던 질문을 받았을 때, 커리어에 대한 걱정은 선택에 대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당신이 기대했던 일이 아닌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괜찮나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처음엔 처음 듣는 직무명이라 오히려 커리어가 꼬이는 건 아닐까? 향후 이 직무명을 달고 이직할 때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칫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5년간 3개의 회사 속 나의 직무명은 모두 마케터였지만, 마케터로서 했던 모든 일들이 다 같진 않았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직무여도 회사마다, 파트마다 하는 일은 다 다르다. 어차피 같은 직무명이어도 다른 일을 하고, 다른 경험치를 쌓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포트폴리오는 '마케터', '기획자'라고 정의되기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소개말로 시작된다. 정리하자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을 하게되는 것은 어느 회사에 어느 직무명으로 들어가더라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인터뷰의 궁극적인 기능은 회사와 지원자 간의 핏이 얼마나 잘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지만, A 회사와의 인터뷰는 나에게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이전까지는 나도 모르는 새 스스로를 '직무'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린 판단과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커리어 패스 관점에서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직무명 하나만으로 나를 정의하지 않고 싶다.






마케터(이)가 PM으로 전직했다!


그렇게 나는 조리사에서 마케터를 지나 PM이 되었다. 훗날 이런 선택을 했던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 오겠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데 마케터가 내 인생의 골이었을 리가 없다.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나를 부르는 수식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 능력치의 범위가 넓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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