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당신이 좋다.

밀로의 <비너스>와 벨베데레의 <토르소>

by Jin


‘5년간의 직장생활이 내게 남긴 건 무엇일까?’

돈? 명품 백? 하드웨어 하나를 전부 채워도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사진? 아니면 5평 남짓한 방 한편에 꾸역꾸역 쌓여있는 옷가지들?

한때는 이것들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불혹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것이 ‘사람’ 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름 아닌 사람이어서 무척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손도 채우지 못하고 남는 손가락이 있을 만큼 좁은 인간관계이지만 그래도 그녀들이 곁에 있어 고맙다.


정확히 어디를 향한 비행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정도로 정신없이 10시간 이상을 달렸던? 비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장 친한 선배 언니와 함께한 팀 비행이었다. 우리 둘은 일등석 FG(first class galley duty 갤리 안에서 서비스 준비하는 역할)와 FJ(first class junior duty 승객 서비스 담당)를 맡았다.

대형기종인 경우 일등석은 총 12석으로, 만석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승객이 점점 늘어나 삼등석, 이등석 순으로 차오르더니 결국 일등석까지 만석이 되었다.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emergency’라 부른다. FG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상에서, 정확히는 door close 전까지 아이템들이 승객 수에 맞춰서 잘 실렸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그날도 비행기에 탑승해서 승객 탑승 후 문을 닫기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승객 짐 보관하랴, 신문 서비스하랴, 웰컴 드링크에, 화장실 체크까지 한 시간이 벌써 지나갔는지 ‘띵 띵 띵’ 이륙 사인이 나왔다. 백미 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을 거칠게 내쉬며 겨우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데 언니가 내게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지아야 큰일 났어…….”

“스페셜 밀에 꼬리곰탕이 있는데 꼬리만 실리고 탕이 안 보여.”

“...........”


스페셜 밀은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일반식이 아닌 승객께서 특별히 주문한 식사를 말한다.

갤리 듀티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인데…. 그것도 일등석 승객이 주문하신 스페셜 밀을 실수하다니……. 이미 비행기는 이륙을 하고 있었고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벨트 사인이 꺼지고 드디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언니는 2A 회장님께 다가가 눈높이 자세를 취했다. 잘못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사죄를 하는 모양이었다. 회장님은 결국 꼬리곰탕 대신 스테이크 웰던을 드셨던 것 같다.

2시간 반의 기나긴 서비스가 끝나고 언니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화장실에서 두 눈이 벌겋게 되어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시니어에게 잔뜩 꾸중을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다’라며 언니의 어깨를 두드려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둘은 예전보다 훨씬 돈독해졌다.

그렇게 언니의 FG 데뷔는 끝이 났고 지금도 언니를 만나면 그때 일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만약 그때 언니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더 멋진 일등석 데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손가락을 채우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완벽에 가까워지고 싶겠지만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했을 때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완벽한 사람보다는 가끔은 그렇게 구멍이 보이는 언니가 더 좋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대할 때 미학적으로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미술작품에도 존재한다.

몸통만 남은 토르소이다.


<벨베데레의 토르소> 바티칸 박물관. 기원전 1세기경. 60*75*56cm


‘토르소’란 머리나 손, 발이 없는 몸통만 남은 조각이나 회화 작품을 의미한다.

벨베데르의 토르소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카라칼라 목욕탕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헤라클레스라는 설이 유력했으나 훗날 트로이의 영웅 아이아스임이 밝혀졌다. 떨어져 나간 팔, 다리를 조합하면 다른 유물에서 발견된 아이아스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독화살에 맞아 죽고 난 후 그의 방패와 갑옷 등 유품을 두고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는 유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툰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뛰어난 언변에 패한 아이아스는 들판의 양 떼를 오디세우스와 아가멤논으로 착각하고 몰살시킨다. 정신을 차린 아이아스는 자신의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살을 결심하는데 작품은 아이아스가 헥토르의 칼로 자살을 하기에 앞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작품이 발견되었을 때,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팔과 다리를 복원하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추가적인 작업이 작품의 예술성을 침해할 수 있고 지금 작품 자체만으로도 가장 이상적인 조형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라며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팔과 다리가 복원되지 않은 토르소는 훗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장 바티스트 카르포의 우골리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 많은 예술가에 의해서 차용되었다.


다음 작품을 보자.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박물관. 기원전 2세기경. 높이 204cm

지금 보는 것처럼 비너스는 발굴 당시 양쪽 팔이 발견되지 않았다. 두 팔의 모양을 두고 학계에서는 여러 의견이 검토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오른팔은 배를 가로지르며 옷 위에 걸친 모습으로, 왼팔은 구부려 황금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추정했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싶다. 하지만 오랜 연구와 심사숙고 끝에 내린 비너스의 원래 모습은 복원되지 않았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비너스는 속옷을 비롯한 각종 광고에 등장하면서 미의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팔등신, 황금비율, S라인, 콘트라 포스토까지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미의 기준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에라도 비너스의 복원을 시도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복원 전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루브르로 달려들 것이다.


앞서 소개한 두 작품 외에도 미완으로 남겨졌거나 전쟁이나 세월의 흔적으로 훼손된 채 남아있는 예술품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심지어는 코나 머리가 없어진 작품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품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진 않는다.

토르소가 머리와 팔, 다리가 전부 복원되었다면? 혹은 운이 좋아 원래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밀로의 비너스가 원본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숭고한 미를 안겨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팔과 다리가 없어 오히려 그 몸통의 조형성이 더 부각된 것은 아닐까? 없어진 부분으로 인해 남아있는 몸통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 아닐까?

양팔이 없는 그녀가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기원전 150년경에 제작된 비너스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곤 한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라고 하는 비너스조차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며 15시간을 기꺼이 날아가 감상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곁에 머무는 이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나는 것은 사람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탄탄대로를 걸었던 빈틈없는 사람보다는 아픔과 시련을 극복하며 넘어지고 다쳐본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간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허술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느낀다. 나는 이것을 ‘온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가꿔야 하는 것은 동인 미모가 아니라 ‘온기’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내가 나이가 들수록 따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너무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

그가 혹은 내가 허술한 사람이어서 서로의 곁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