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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Nov 17. 2024

나의 떡볶이 사랑 1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떡볶이를 좋아했다. 어린애가 매운 걸 좋아해서 고추장에 쓱싹쓱싹 비벼 먹는 것도 좋아했다. 내 밥그릇은 속은 하얗고 겉은 꽃무늬의 플라스틱 그릇이었는데, 그릇 속 안이 언제나 고추장 빨강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의 떡볶이 사랑은 역사가 깊고 지금까지 식지 않았다. 다섯 살 때 매일 엄마한테 백 원을 받아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거의 매일이었던 거 같다. 어느 날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다. 주인아줌마한테 돈을 건넸는데 떡볶이를 결국에는 못 먹은 거다. 울면서 집에 왔다.


엄마한테 돈은 냈는데 떡볶이를 못 먹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나는 '다시 간다고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당당하게 주인한테 말했다.


"얘가 돈은 냈는데 떡볶이를 못 먹었데요."


주인은 순순히 떡볶이를 내온다. 나는 아까 못 먹은 떡볶이를 먹었다. 후련했다. 속상함이 풀렸다. 엄마가 있어서 든든했다.


초등학교 때는 공릉동 산업대 앞(지금은 과기대로 바뀌었다.) 삼거리 건너편에 포장마차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그곳은 일 학년 때 같은 반 친구 S의 엄마가 떡볶이 포장마차 주인이었다. S는 눈이 쌍꺼풀이 예쁘고 피부가 까무잡잡하니 동글동글 귀여운 친구였다.


나는  S 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학교 끝나고 S가 엄마 보려고 포장마차에 들르면 친구인 우리도 덩달아 떡볶이 맛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맛있었다. 나중에  S랑 다른 반이 되어서 멀어졌는데 더 이상 떡볶이 맛은 못 봤다. S랑 멀어진 것보다 S네 떡볶이를 못 먹게 된 것이 더 아쉬웠다. 항상 집 가는 길에 지나쳤는데 항상 손님이 정말 많았다.


중학교 때는 중랑구 중화동에 살았는데 동네 초입에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었다. 여기는 손가락 크기의 쌀떡 끝의 단면을 약간 어슷하게 썬 떡볶이였다. 어슷하게 썬 단면이 얇으니까 양념이 잘 배어들어 참 맛있어 보였다. 주인의 노하우인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떡볶이 포장마차 앞에서 사람들이 떡볶이 먹는 모습을 구경을 했다. 사 먹지는 못하고 주인아줌마가 항상 빨간 떡볶이를 휘휘 젓는 모습을 하염없이 구경만 했다. 양념이 골고루 밴 어슷 썬 떡볶이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군침만 삼키다가 집으로 갔다. 오백 원만 있으면 한 그릇 먹을 수 있는데 그걸 못 사 먹었다.


어느 날 그날도 하염없이 구경하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떡볶이 값은 다음에 줘도 되니까 지금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망설였다. 다음에 돈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그런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솔깃한 제안에 앞뒤 생각  못하고 먹었다. 역시 떡볶이의 어슷 썬 단면이 얇아서 양념이 잘 배어들어 너무 맛있었다. 나는 후의 일이 걱정되었다. 뭔가 이렇게 먹는 것이 처음이라 먹으면서도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줌마께 "다음에 꼭 드릴게요" 하고 나왔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오백 원은 생기지 않았다. 졸지에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갚기로 하고 갚지 않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챙겨주는 엄마도 없고, 우리 아버지는 딱 학교 등하교 할 차비만 주었기 때문에 돈은 정말 정말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 떡볶이집 앞으로 지나다닐 수 없었다. 돈도 갚지 못하는데 아줌마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집 가는 길을 한참을 돌아서 다녔다. 이제 더 이상 떡볶이 구경은 하지 못하게 됐다. 그 동네도 잠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갔는데 글을 쓰면서 떠올려진 기억이다.


효자동 무역회사 다닐 때는 사무실 앞 대로변 건너편에 효자동 시장이 있다.  효자동 시장 중간쯤에 가면 아주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석유곤로 같은 데에서 프라이팬에 소량씩 만든 기름 떡볶이를 파신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희한한 떡볶이였다. 국물이 하나도 없고 그냥 고춧가루만 범벅이라 '맛있을까?' 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방앗간에서 뽑아온 떡인지 떡볶이 떡이 얇고 시중에 파는 떡볶이떡이 아니었다.  프라이팬에서 엉성하게 휘휘 돌려치다가 기름종이 같은 것에 툭 싸서 주시는데, 와 처음  먹어보는 별미였다. 점심시간에 사가지고 와서 사무실에서 맛나게 먹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꽤 유명한 곳이었다. 어쩐지 갈 때마다 줄이 길었다.


지금은 별의별 떡볶이가 다 있는데,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 안 난다.  


떡볶이 얘기가 더 있다. 2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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