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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Nov 26. 2024

나의 사람에 대한 편식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고 선호하는 사람을 사귄다.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사이가 좋다.


나는 안 그럴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던 것 같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충 마음속으로 호불호를 생각하며 나누었던 것 같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편식이라면 편식이겠다.


아무리 내가 감추려고 해도 상대방은 알겠지. 나의 표정이나 정성으로...


오늘은 관계에 대한 나의 자아성찰을 해보려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마음에 안 들어할까.  아마 사람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유형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일단 싫어하는 유형은 투덜대는 사람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니 같이 있으면 피곤하다.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도 싫다. 본인은 솔직하다고 하는데 솔직한 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모든 조건이 완벽해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선호하지 않으면 꽝이다. 반대로 싫은 모습이어도 나를 좋아하면 용서가 된다. 대표적인 게 우리 가족들이 이런 모습이 있다. 가족은 편식할 수 없으니 감내하고 산다.


위의 유형들을 대하는 내 모습은 어떤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물질도 주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대해서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결로 가는 것인데 나는 웃기게도 되게 분개했다.


'왜. 나한테 잘해주지 않지?'


생각해 보면 상대방도 나의 에너지와 똑같이 대하는 것인데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분개한 것이다.

놀부심보도 아니고 내가 웃기다. 


그리고 막상 상대방이 잘해준다고해도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속에 '싫은 사람'으로 정의 내렸으니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부담이다. 이중적인 나의 모습이다. 나에게 관심없고 못해줘도 문제, 나를 좋아해서 잘해줘도 문제인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알았다. 내가 사람 편식이 많았다. 나는 되게 정의롭고 차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상대방의 불손을 부당하게 본 것이다.

 

몇 년 전 사십여 년을 동고동락한 올케언니가 떠나갔다. 더 이상 우리 집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와 마지막 만남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떠나는 올케언니가 야멸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여 년간 정도 없나 보네 생각했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 보니 나는 언니에게 시간도 마음도 물질도 준 적이 없다.  언니는 내가 선호하는 사람의 유형이 아니었던 것이다. 속으로 못마땅했었나 보다. 단지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좋아하지 않았다.


비단 언니뿐 아니라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러한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사람, 편식하는 사람만 만났다.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별이 있었다.


가진 에너지와 여건상 이렇게 사는 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니 서운해해 할 필요가 없는데 서운해하는 내 마음이 놀부심보라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누가 먼저 선호하지 않았고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비즈니스적으로 대했다. 나는 감춘 줄 알았다.


거울이다. 상대방도 똑같이 느꼈던 것이다.


아카데미여우주연상 받을 정도로 감췄지만 다 보인다.


그러니 내가 주는 데로 대접받는 것에 서운해하거나 화내지 말자. 나에 대한 다짐이다. 그리고 나도 투덜대고 직설적일 때가 수두룩 빽빽인데 나에 대해 무척 관대했나 보다.


나에 대한 다짐이다.


놀부심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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