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와. 와. 깜짝 놀랐다. 나에게도 시기심이 있었다.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란 속담이 있다. 나는 이 속담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이,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이 돈을 잘 버는 것을 보고 시기하면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뭘 그런 질투하냐. 돈을 잘 버는 만큼 힘든 거지.'
'에이 뭘 그런 걸 시기하냐. 에이 수준 낮어.'
이랬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다.
아주 가까운 사촌의 자녀 첫째가 명문대에 진학했다. 첫째가 그 어렵다는 전문직과에 입학했을 때, 참 오랫동안 배가 아팠었다. 축복과 부러움보다는 배가 아팠다.
속으로 긍정의 회로를 돌렸다.
'에이 잘 키웠네. 부럽네. 첫째가 머리가 좋았었네.'
시기심을 누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겨우 평정심을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집 둘째가 또 전문직 명문대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또 배가 아팠다. 실제로 배가 아프더라.
축하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그이는 무슨 복을 타고 난 거지?'
'와. 어떻게 그 어려운 자식 교육을 잘했을까.'
애들이 우리 애들과 연령대가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육아를 했고 키웠기 때문에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뭘 한 거지?'
나는 애들을 키우며 많이 힘들었었다. 남편도 속을 썩였었고, 나의 서툴고 미숙한 양육방식으로 애들을 잘 키우기 힘들었었다. 내 기준에, 애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다.
참 이게 시기심인가 싶다. 아주 쳐다보기도 낯선 시기심이 목구멍에 탁 걸려있는데 아주 불편하다.
'나... 왜... 시기하지?'
이런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 나... 사람 참 별로네...'
여러 가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시기하는 마음, 부러워하는 마음. 손 안 데고 그이에게 KO패를 당한 것 같은 마음. 나는 뭐 했나 싶은 한심한 마음. 속 썩이는 자식들 원망하는 마음.
평소에 그이를 좀 얄미워하기도 했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이쁘고 현명한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좀 얄미웠었다.
평소에 얄미워하던 사람의 자녀 둘이 잘되니 더욱 시기심이 생긴 것이다.
긍정의 회로로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이런 내가 참 별로다.
괜히 저녁 늦게 들어온 막내아들한테 신경질을 냈다.
"이 놈의 새끼야, 누구네 애들은 명문대 입학하고 난린데 너는 공부도 안 하고 돌아 뎅기냐."
평소에 잘하지 않던 새끼야 소리와 비교하는 말까지 하는 내 모습이다. 아주 별로다. 아주 수준 낮다.
막내가 풀 죽은 모습으로 대답한다.
"나, 아직 열한 살인데... 대학교 가려면 멀었는데..."
"그런 말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책이라도 읽고 공부하란 말이야. 걔네들은 어릴 때부터 와이책 읽고 공부했어. 그렇게 싸돌아 뎅기지 말고 공부 좀 해."
애들이 상처받는지도 모르고 내 시기심의 불똥을 괜한 데다 쏟아 버리는 내 모습이다.
이건 아니다. 빨리 글을 써서 정리해 보자.
내가 왜 그런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반듯하고 현명하고 공부 잘하고 효자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됐다. 노력대로 안 됐고, 맘대로 안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인생에서의 성공기준이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에 최고의 가치로 두었었나 보다.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내가 딱 한 가지 욕심 내는 것 하나. '자식농사'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포기하고 결핍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성공한 듯 보이는 그 누군가를 보았을 때 나는 위축되고 시기심이 났던 것이다.
자. 이제 나는 이것을 이성적인 신호로 바꾸려 한다.
시기심...
내 안의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시기심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다.
상대를 향한 시기심 같지만, 결국은 내 안의 결핍이 건드려진 불편한 감정임을 직시하려 한다. 그러니 시기심의 실체는 내 안의 욕망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 해진다. 잠시의 파도가 왔다가 다시 잠잠해지고 애들과 대화를 나누고 웃을 수 있다.
사람을 사람대로 바라보고 나의 안온에 집중한다.
내가 행복한 것, 내가 소중한 것에 집중한다.
내가 낳은 자식은 그저 세상에 살아갈 존재이지 나의 욕망을 채워 자존감을 올려줄 대상이 아니다.
존재자체로 소중한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없어졌다. 완전히는 아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졌다.
나도 시기심이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