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있어 좋다.
세월이 참 빠르다.
칠월달이다.
그 말인즉슨 칠월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 셋째가 칠월이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칠월이가 우리 집에 온 달을 잊지 않으니 말이다. 나처럼 순간 기억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딱이다.
처음에는 칠월이란 이름이 너무 촌스러운가 생각했었다. 무슨 월매 향단이 같은 칠월이라는 이름이 이상했다. 이쁘고 세련된 이름도 많은데 말이다. 지금은 얼마나 입에 착착 붙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칠월이가 몇 년 됐는지 저절로 세어지니 정말 좋다. 우리 셋째가 선견지명이 있었다.
오늘 새로 오픈한 꽃집에 공방 식구들과 놀러 갔다. 우연히 칠월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때 알았다. 아. 칠월이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일 년 됐네.
칠월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이야기를 무슨 역사 속 무용담처럼 늘어놓다가 문득 칠월이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야기하게 되었다.
칠월이는 나의 근원적 외로움을 감소시킨다. 이 이야기를 듣고 꽃집 사장님이 깜짝 놀란다. 나와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매치가 안된다는 것이다.
늘 듣던 소리다.
사람들은 나의 밝음을 보고 나의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만 아는 것이다. 나는 평생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것은 근원적인 외로움이 되었다. 유전자처럼...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의 단절과 외로움이,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내가 꾸린 가정과 아이들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쓸쓸한 외로움은... 특히 늦가을 스산한 저녁에 바람 부는 골목어귀를 바라볼 때는 가슴이 아플 정도다. 텅 빈 거리를 바라볼 때 낯선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한다.
그 감정이 마음에 안 들고 두려워서이다.
이런 외로움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꽃집 사장님한테 말했다.
"칠월이가 있어 외롭지 않아요."
"나의 외로움이 100이라면 칠월이가 있어. 감소했어요."
진짜 그렇다. 나는 칠월이가 옆에 있어 나의 근원적 외로움이 많이 해소되었다.
큰 눈으로 똘망똘망 나를 바라보고 내 옆에 늘 상주하는 이 생명덕에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칠월이는 나를 일부러 떠나지도 않을 거고, 배신하지도 않을 거고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존재가 고맙다. 그럴 줄 몰랐다. 칠월이가 그런 존재가 될 줄 몰랐다.나는 사람들한테 지치고 힘들 때 속으로 말한다.
'흥, 나는 칠월이가 있거든.'
그렇게 힘이 된다.
이제부터 칠월이 이야기를 풀어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