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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un 28. 2019

<베르나르 뷔페展> 베르나르 뷔페를 통해 본 전시

[전시] 베르나르 뷔페展

  “요 앞 횡단보다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 있잖아, 글쎄 그 거지가 오후 다섯 시 땡 하니까 자리를 탁탁 털고 일어나서 근처에 주차돼있던 있는 벤츠를 끌고 집에 가더래” “저기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 그 사람 강남에 집이 두 채에 건물도 한 채 있대”


  어쩌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평소 볼 때마다 측은하게 여겼던 그 사람에게 묘한 배신감이 든다. 물론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내가 그를 적선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몇 푼 안 되는 돈이 몹시 아까워진다.


  전시의 끄트머리에 쓰여 있던 “삶에 지쳤다”라는 베르나르 뷔페의 말에 다시 한번 그의 작품과 삶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베르나르 뷔페를 열렬히 비판하던 평론가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들의 노력이 정치적인 이유나 개인의 취향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마음 한편에 나 같은 옹졸한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옹졸한 생각이 든다.


  15세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고, 19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고, 20세에 권위 있는 비평가상을 받고 28세에 프랑스 최고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고… 아무튼 이른 나이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르나르 뷔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프랑스 화가로 꼽히며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았다. 전후 사회의 빈곤과 고통을 우울한 잿빛과 날카롭고 뚜렷한 선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인기가 있었다. 추상주의가 한창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끌고 있을 때, 홀로 구상주의 화가의 상징이 됐다.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베르나르 뷔페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자 고상한 상류층 차림에 고급차를 타고 화려한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며 작업에만 몰두하던 그가 성을 사들였다. 살이 붙은 얼굴에 더그의 상징인 수척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의 그림은 바뀌었고, 작품 활동에 상업성이 짙어졌다. <베르나르 뷔페展> 에서 그의 그림이 변하는 것을 보며,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너무 동떨어지면 예술가 자신 또한 예술과 동떨어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베르나르 뷔페가 사망했을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를 보면 당시 그에 대한 언론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황량한 풍경’ ‘혹독한 정물’ ‘삭막한 종교화’ ‘슬픈 서커스단’ ‘이른 성공 ‘부와 명예’ ‘존경받지 못한 화가’ 기사에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 활동과 소장처가 쓰여있다. <베르나르 뷔페展>의 작가 소개에 비하면 그 내용은 단출하고 빈약하며 어조 또한 상반된다.


  프랑스의 평론가들은 정말 지독히도 그를 비난했다. 그 이유가 아까 말한 옹졸한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시대적 흐름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순전히 취향 때문인지는, 아니면 그 전부 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베르나르 뷔페가 스스로 이룩한, 또 비평가 자신들이 인정한 그의 영광을 집요하게 깎아내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와 내가 와서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오래된 프랑스 평론가들의 감상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과 작품 활동은 프랑스 평론가들의 평가와 분명 관계가 있다. 전시를 통해 그를 공격했던 비평가들도, 그에게 열광하던 대중들도, 이제와 그를 다시 재조명해보려는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기구한 베르나르 뷔페의 인생은 그의 작품 활동의 변화를 주목할 수 있게 해줬다. 전후 사회를 묘사한 우울하고 앙상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전쟁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줬고, 그가 이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요즘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과 닮은 구상주의 화풍은 다시 그의 그림을 재조명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줬다. 그의 독특한 화풍과 기법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는 전시를 통해 베르나르 뷔페를  수 있었고, 베르나르 뷔페를 통해 그의 작품을 잘 감상할 수 있었다.




베르나르 뷔페展

기간 2019년 6월 8일 (토) ~ 2019년 9월 15일 (일)

장소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베르나르 뷔페展 출처 : 예술의 전당


<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 展:천재의 캔버스>는 20세기 프랑스의 마지막 구상회화 작가인 베르나르 뷔페의 국내 최초 대규모 단독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쉬킨 박물관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비롯하여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4-5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을 포함한 총 92점의 유화작품들과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 및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 전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베르나르 뷔페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그렸던 광대나 서커스의 테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에 대한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뷔페는 5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며 본인이 마주하는 일상 속의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본인의 초상을 캔버스에 담았다.이번 전시에서는 베르나르 뷔페의 시대별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 초반에는 유명해지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50년대의 대표적인 정물화와 인물초상화 그리고 평생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아나벨과 서커스 테마가 등장하는 1960년대의 대표작들을 보여준다. 전시 중반은 거친 직선으로 표현한 잔혹한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 풍경화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인물화 그리고 오디세이와 같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대작들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은 1990년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지며 뷔페가 죽기 전까지 작업하였던 화려한 색상의 광대 시리즈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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