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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un 22. 2019

<에릭 요한슨 사진전> 사진사가 빚어준 나의 얼굴

[전시] 에릭 요한슨 사진전 : Impossible is Possible

  증명사진을 찍으러 갈라치면 일단 단정한 옷을 골라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한다. 정장을 입고 찍어야 할 때는 옷을 따로 준비해 사진관에 가서 갈아입기도 한다. 사진관에 가서도 한쪽에 마련된 화장대에서 사진 찍힐 나의 앞모습을 한 번 더 점검한다. 그리고 끝으로 거울에다 대고 어색한 표정도 한 번 지어본다.


  어릴 때는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사진에 많이 찍혔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순간 포즈를 취하고 표정 짓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사진에 찍히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앨범 속 사진을 보면 자랄수록 얼굴에 표정은 사라져 가고, 그만큼 찍힌 사진도 줄어든다. 특히 증명사진에는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내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어린 시절 증명사진 속 나는 밝게 웃고 있지만, 최근의 나는 남부끄러울 만큼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원래 증명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참 난감한 일이다. ‘어디 수술을 해서 보기 좋게 고치진 못할망정 표정이라도 좀 노력해야 하는 거 아냐?’라며 스스로 반성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부러워서 사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물어본 적도 있지만, ‘이거다!’ 싶은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정말 누가 좀 명쾌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그러면 다시 사진을 좀 찍어볼 텐데.


  준비가 끝나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면 카메라 앞에 오묘한 색의 장막이 쳐있고 그 아래에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가 하나 놓여있다. 거기에 카메라를 보고 앉는다. 허리를 꼿꼿이, 어깨는 펴고, 고개는 똑바로, 턱은 안쪽으로 당긴다. 어떤 자세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는 이미 잘 알지만, 그래도 사진사는 카메라 앞에서 나와 내 자세를 다시 한번 잡아준다. ‘살짝 웃으세요’ ‘하나, 둘, 셋" "팡!’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 터진다. ‘눈을 깜빡였나?’ ‘표정이 이상한가?’ 뭔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 장 더 찍을게요” “하나, 둘, 셋” “팡!” “한 번 더, 하나, 둘, 셋!” “팡!" 사진에 내 얼굴이 찍혔다.


Go Your Own Road, 2008 출처 : www.erikjo.com


  예전에는 사진을 찍고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하고 하루 이틀 있다가 사진관에 다시 가면 증명사진이 나와 있었다. 항상 난 어쩌지 못하고 굳어버린 표정 때문에 증명사진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긴 대로 나온 것일 테니 잘 나오든 못 나오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진을 찍자마자 나를 컴퓨터 앞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내가 보는 앞에서 곧바로 보정한다. 눈, 코, 입, 얼굴형은 인상이 뚜렷해 보이도록 반듯하게 다듬는다. 피부 톤을 밝게 맞추고 잡티도 없앤다. 머리 잔털 지우고 눈썹도 정리한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 내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민망해 얼굴이 화끈거리고 본의 아니게 사기꾼이  것 같아 마음이 찝찝하다. 사진사는 마치 내가 사진관을 들어올 때부터 얼굴의 어디를 어떻게 고칠지 다 생각해놓은 것처럼 막힘없이 능숙하게 착착 보정한다. 사진사의 손가락은 마치 프로게이머처럼 키보드 위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고 마우스는 빠르게 쓱싹쓱싹 움직인다. 끝으로 사진사는 원래 사진과 보정한 사진을 나란히 보여준다. 분명 좀 전까진 내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내 얼굴이 아니게 되었다. 한쪽에 얼굴은 난데 다른 한쪽의 얼굴은 내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내 사진이 사진사나 다른 사람에게는 더 보기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가뜩이나 표정도 부자연스러운데 생긴 것마저 내가 아닌 것 같아 사진을 사용해야 하나에게는 꺼림칙하다. 차라리 내 표정을 좀 자연스럽게 바꿔주면 좋겠는데.


Full Moon Service, 2017 출처 : www.erikjo.com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여느 사진작가들의 사진과는 달랐다. 전시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사진가 이자 리터칭 전문가로서 여러 장의 사진을 컴퓨터 프로그램(포토샵)으로 합성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사진작가가 빛을 소재 사진기를 이용해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면, 에릭 요한슨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소재로 (포토샵)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Full Moon Service - Behind the Scenes 출처 : 유튜브 Erik Johansson 채널


  에릭 요한슨의 전시를 보면서 나의 증명사진을 보정해주던 사진사의 현란한 손놀림이 생각났다. 그 사진사도 에릭 요한슨처럼 자신의 뛰어난 상상력과 포토샵을 다루는 솜씨로 나의 얼굴을 새로 빚었. 솔직히 말하면 보정한 사진이 훨씬 보기 좋았기 때문에 나는 사진사를 말릴 수 없었다. 아마 의사의 솜씨로도 내 얼굴을 그 증명사진처럼 만들긴 쉽지 않을 것이다.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기발한 상상을 섬세하게 표현해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다. 전구를 교체하듯 매일 바꿔 끼워지는 달이라던가 길을 내며 달리는 사람이라던가 낮과 밤을 바꾸는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작품의 여기저기를 꼼꼼히 보게 만든다. 반면, 그의 표현에 재료가 되는 사진은 완성된 이미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현실적이고 조금 엉성하기까지 하다. 그가 완성한 환상적인 이미지도 증명사진 속 나의 얼굴처럼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증명사진에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과는 다르게, 그러한 차이가 바로 에릭 요한슨이 느끼는 자신의 작업의 매력일 것이고, 사람들이 느끼는 그의 작품의 매력일 것이다.




에릭 요한슨 : Impossible is Possible

기간 2019년 6월 5일 (수) ~ 2019년 9월 15일 (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에릭 요한슨 : Impossible is Possible 출처 : 예술의 전당


에릭 요한슨의 작품들은 우리가 매일 상상하는 것들과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하나의 사진 작품 속에 담아 낸다.

에릭 요한슨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진다, 과연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인걸까? 우리의 상상력은 왜 항상 한계에 부딪히는 것일까? ‘The only thing that limit us, is our imagination’(우리의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시 공간은 4개의 각기 다른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며, 이 공간들은 각기 다른 ‘상상과 초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작품 50점, 스케치 20점, 영상 10개, 작품에 들어간 소품 등이 전시될 예정이며 이번 전시는 에릭 요한슨의 세계 최초 대규모 전시이자 아시아 최초의 전시로서 그 대단원의 서막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나보자.

출처 : 예술의 전당


에릭 요한슨 : Impossible is Possible 출처 : 유튜브 조규재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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