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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un 02. 2019

<기생충> 움직이는 것은 모두 변수

[영화] 기생충 (PARASITE, 2019)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니 "냄새난다"는 말에 관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쌤의 회사 근처 중식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쌤은 몇 해 전 나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줬었지만, 이제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어느 대기업에 입사해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쌤의 새로운 생활이 궁금했다. 마침 쌤도 전과 달리 대부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바리오씨는 꼭 35살 전에 결혼하세요!” 쌤이 말했다.

  “왜요?”

  “남자가 35살 넘어서 혼자 살면 이상한 냄새 풍겨요. 우리 회사에 결혼 안 한 35살 남자 팀장이 한 명 있는데 근처에만 가면 항상 이상한 냄새가 난다니까요.”

  “에이 설마. 그분만 좀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무튼 있어요. 혼자 사는 남자한테서 나는 냄새. 다른 동료들도 다 그 팀장 근처에 가는 걸 꺼려요.”

  “아…”


  나는 괜히 내 옷에 냄새를 슬쩍 맡아봤다. 나오기 전에 분명 깨끗이 씻었고 향수도 뿌렸고 아직 35살이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혹시 지금 나한테 냄새가 나서 하는 말인가 싶었다.


  “저한테서 무슨 냄새나요?” 근데 나한테 싫은 냄새가 났다면 쌤은 바로 말했을 거다.

  “네. 나쁜 냄새는 아니고, 그냥 섬유유연제 냄새만 나요.”

  “당사자한테 말을 해주지. 주변 사람은 다 꺼리는데 본인만 모르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향수라도 뿌리게 말해줘요.”

  “이미 말해줬어요. 그리고 향수를 뿌리면 그 이상한 냄새랑 섞여서 더 역해져요”

  “아…”


  나는 35살까지 몇 년 남았는지 슬쩍 계산해봤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어차피 그전에 결혼할 생각이었다. 계획도 있었다. 내가 35살에 혼자 살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전에도 그와 비슷한 계획이 두 가지쯤 있었다.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고, 그 대학에 갈 수 있을 만한 갈 계획도 갖고 있었다. 1학년 때는 무얼 하고 2학년 때는 무얼 하고 3학년 때는 무얼 하고. 그대로만 하면 그 대학에 가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했다. 마치 이미 그 대학에 다니는 것 같았고, 어디서 학교 마크라도 보면 터무니없는 애교심에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선생님은 1학년 때는 물어보면 누구나 목표가 서울대라고 했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목표는 조금씩 낮아질 거라고 했다.

  나목표는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선생님 말처럼 점점 낮아졌다. 1학년 때 웠던 계획은 점점 미뤄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압축하고 생략해야 했다. 규칙적인 학교생활에서 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상수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도 시간이 갈수록 하나둘 변수로 변했다. 내 계획에는 공부와 약간의 휴식밖에 없었는데,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러도 다녀야 했고 영화도 봐야 했고 음악도 들어야 했고 운동도 해야 했다. 그때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았다. 특히 축구 농구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록 음악은 나의 기분 그 자체였다. 소풍, 체육대회, 축제 같은 학교 행사가 있으면 그 후유증이 며칠씩 갔다. 학교에만 있으면 희한하게 아픈 데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목표하는 대학을 여러 번 바꿨고, 그보다 여러 번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러다 결국 3년 뒤 나는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기 위해. 이번에도 계획을 세웠다. 대신 고등학교 때처럼 미루지 않고 독한 마음으로 계획대로 열심히 해볼 작정이었다. 우선 입학하자마자 매일 도서관에 갔다. 학교 안팎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신문을 매일  읽고 책도 많이 봤다. 자격증과 어학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반드시 계획을 지켜서 목표를 달성해 보려고 했지만 또 변수가 문제였다. 고등학생 시절 계획의 실패를 교훈 삼아 더 많은 변수를 고려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대학교에 오니 행사는 커졌다. 친구들과는 미성년자일 때보다 더 멀리 오래 놀러 갔다.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해야 했다. 태어나기 전의 영화와 음악이 좋아져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이 늘었다. 복잡해진 인간관계는 들어야 할 말과 해야 할 일을 끝도 없이 만들었다. 결국 더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한참 어긋나고 나서야 나는 계획을 멈춰야 했다. 더 이상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했다. 나는 일단 군대에 갔다.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이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만큼 그 뿌리가 깊은 것이 학력의 대물림이다. 애초에 돌이 어디에 놓이냐에 따라 그 석생(石生)은 이미 정해지고, 비는 결국 지하로 흘러들어 간다. 사람들은 돌처럼 놓인 자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흘러내려가는 비가 자연의 힘을 거스르기라도 할 것처럼 계획을 세운다.

  기택도 사업이 망하기 훨씬 전,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부터 계획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아들 기우도, 딸 기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박사장 네 집에 들어가기 전에도, 들어가서도 계획이 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박사장 네 식구도 마찬가지다. 다 계획이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기택의 식구들처럼 나도 처지의 역류를 꿈꿨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을 갖고 열심히 어찌어찌해봤지만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돌이 어딘가 한 번 놓이면 스스로 그 자리를 바꿀 수 없듯이, 내리는 비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듯이, 애초에 타고난 처지는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 없었다. 운이 좋게 거센 바람에 밀려, 지나는 발에 치여, 흐르는 물에 쓸려 움직였던 것도 나중에 여기저기 이력서나 신청서를 돌리면서 얼마나 사소한지 깨닫게 됐다. 원래 가려던 곳을 올려다보면 아예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처럼 너무나 아득했다.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영화 <기생충>에서 사람들의 계획이 전부 어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지난날들을 돌아봤다. 무수히 많은 계획과 그보다 조금 적은 실패. 운 좋게 한 성공 속에 미처 알지 못한 상수들.

 

  도대체 영화 속의 사람들과 나는 왜 아무리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도 실패를 했을까?

  아무리 꼼꼼한 계획을 세워도 모든 변수를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상수라고 여겼던 것 중 태반이 변수다.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변수는 끊임없이 계획에 훼방을 놓는다. 변수들을 제어할 수 없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오르던 길에서 미끄러지고 제자리로 굴러 떨어진다. 돈이 있다면 그 변수를 상수로 바꾸거나 무시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연의 원리마저 거스를 수는 없다.

  기택의 가족도, 박사장의 가족도, 나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앞날을 계획했고 부지런히 그것을 실행했다. 하지만 나와 그들이 놓친 것이 있다. 계획에서 변수는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애초에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변수다. 그것은 절대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 항상 미리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무언가 언제든지 갑자기 달려들어 내 계획변수가 될 수 있다.


  나에게는 결혼할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목표가 바뀌고 일신에 변화가 생기면서 그 계획을 바꿔야 했다.

  근데, 얼마 전부터 동생이 자꾸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온다. 생각했던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결혼을 빨리 한다. 변수가 생겼다.




기생충 (PARASITE, 2019)

연출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다음


“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기생충 (PARASITE, 2019) 출처 : 유튜브 CJ Entertainment Official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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