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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Oct 20. 2020

두발자전거 타기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2003)

  동네 또래들 사이에서 자전거가 유행이었다. 덩달아 나도 친척형이 타던 자전거를 물려받아 보조 바퀴를 달았다. 안장이 긴 작은 자전거. 아직 두발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드르륵드르륵” 작은 플라스틱 바퀴 소리가 요란했던 그 자전거는 보조 바퀴가 걸려 모퉁이를 크게 돌아야 했다. 또래들과 시합을 하면 뒤에는 나보다 어린 꼬마들의 세발자전거뿐이었다. 바퀴가 거듭될수록 더 힘껏 페달을 밟았다. 모퉁이를 돌 때도 애써 자전거를 기울였다. 덕분인지 두발자전거와의 차이가 점점 좁혀졌다.

  그러다 웬일인지 시끄러웠던 자전거의 소리가 많이 줄었다. 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전거에 달린 보조 바퀴가 어린 내 주먹만큼 올라가 있었다. 얼마 뒤 나는 아빠를 졸라 보조 바퀴를 땠다. 두발이 된 나의 자전거를 타고 평소와 다름없이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뺨에 바람이 스치고 머리카락이 날렸다. 나는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처음 두발자전거를 탄 날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뒤  첫 번째 연애를 했다. 이제 와 떠올려보면, 아까운 무언가를 버려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나고 나서 “에이, 버렸네”라며 아쉬워했던 기억도 없다. 사랑하느라 버리면 아까울 만한 것들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포기한 적은 없었기 때문일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정말 이것들이 사랑하느라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면, 난 아직이다.

  만약 처음부터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해 애썼다면 어땠을까? 결국 타는 법을 배웠겠지만, 분명 많이 넘어졌을 것이다. 배우는 것과 터득하는 것, 단계를 밟는 것과 처음부터 맞닥뜨리는 것, 그중 어떤 게 좋은지 알 수 없다.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한 방법도 마찬가지다.

  “I’m in love” 63살이 되어서야 사랑에 빠졌다는 해리의 고백이 뭉클했다.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될 순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필요하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시간이나 방법은 다 다르겠지만, 결국 누구나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시끄러운 보조 바퀴 소리가 잦아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열심히 달렸을 때, 그것을 의식하고 아래를 내려다보기 전 이미, 난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보조 바퀴를 떼고 처음 두발자전거의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아갔던 것은 그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반드시 지키려 하는 것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그런 지경을 겪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아마 이 영화의 제목이 조금 더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2003)

감독 낸시 마이어스

출연 잭 니콜슨, 다이앤 키튼, 키아누 리브스, 아만다 피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2003) 출처 : 다음


능구렁이 바람둥이 vs 연애에서 손 뗀 그녀

부유한 독신남 해리 샌본(잭 니콜슨)은 20대의 '영계'들만 사귀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진정한 플레이보이. 미모의 경매사인 마린(아만다 피트)과 오붓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마린 엄마의 해변 별장에 놀러간 해리는 섹스를 하려던 결정적인 순간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응급실에 실려가는 신세가 된다. 나이를 잊고 너무 무리를 했던 탓. 동생 조(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주말을 보내려고 별장에 온 에리카(다이앤 키튼)는 엉겹결에 해리의 건강이 좋아질때까지 그를 돌봐줘야할 처지가 된다. 저명한 희곡작가로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이혼녀 에리카는 한창 나이의 딸이 남성우월적인데다 나이도 훨씬 많은 남자와 사귀는 걸 못마땅해하며 은근히 해리를 경멸한다. 그러나 단둘이 며칠을 지내면서 같은 연배인 두 사람은 조금씩 친구가 되어가며 묘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하필…
사랑은 동시에 찾아온다

한편 해리의 주치의인 젊은 미남의사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은 평소에 흠모하던 희곡작가 에리카를 만나자 20여 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매료되고 만다. 줄리안의 저돌적인 구애에 당황하는 에리카. 해리는 묘하게도 줄리안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에리카는 자신이 평소에 거들떠도 안보던 늙은 여자가 아닌가. 게다가 아직 섹스까진 못했지만 그녀의 딸과 한창 사귀던 중이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운 해리. 에리카 역시 줄리안 보다 해리에게 끌리는 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랑할 땐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엄마와 남자친구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챈 마린은 쿨하게 해리와 '쫑'낼 것을 선언하고 해리 역시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또다시 별장에 둘만 남은 해리와 에리카. 어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간 둘은 실로 오랜만에 몸과 마음을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섹스를 나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유로운 독신생활을 즐겨온 해리는 자신에게 '정조'를 기대하지 말것을 선언하고, 에리카는 해리와 자신의 기대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에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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