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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Feb 04. 2021

그때와 같은 실수

두 번째 시절 06

  난 안암동에 살았고 그 친구는 오금동에 살았다. 꽤 먼 거리였다. 그래도 다행히 그 친구는 차가 있었고, 서로의 학교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학교나 안암동에서 만났다. 아주 가끔 오금동에서 볼 때는 그 친구의 차로 갔다가 택시를 타고 안암동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벚꽃이 지고 봄이 한창이었던 때의 어느 날, 그 친구와 나는 함께 서울대공원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에 그 친구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번도 혼자 그 친구 동네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전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길을 확인했다. 그 친구의 집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개롱역. 거기서 내리면 걸어서 금방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천호역에서 마천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이어폰에는 심규선씨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날의 날씨와 꼭 맞는 목소리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길을 잘못 들까 봐 내내 긴장했었다. 마침내 마지막 환승역 스크린도어 앞에 서니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에 조금 여유가 스몄다. 조금 뒤 열차가 들어오고 출입구가 열렸다. 나는 곧장 열차 안을 가로질러 반대편 출입구 앞에 섰다. 이제 개롱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됐다.

  창밖으로 기둥이 연달아 지나갔다.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리 확인한 노선에 없던 지하철역 이름이 스쳤다.

  굽은다리

  지하철을 잘못 탔다.

  지하철은 상일동 방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곧장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편 플랫폼으로 갔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사과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5분 정도 늦을 것 같았다. 그나마 미리 좀 서둘러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약속에 늦게 된 스스로가 달갑지 않았다.




  고덕역에서 약속이 있던 나는 5호선 상일동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 천호역에 갔다. 진짜 오랜만이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5호선 상일동' 안내판이 보였다. 나는 예전의 실수를 또 반복하게 될까 봐 한 번 더 확인한 후 계단을 내려갔다. 열차는 금방 들어왔다. 플랫폼에서 기다리기 시작할 때 이어폰에서 나왔던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나는 습관처럼 곧장 열차 반대편 출입문 앞에 가 섰다. 이제 고덕역에서 내리면 됐다.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안도했다. 이내 열차가 출발하고, 내 시선은 여느 때처럼 멍하게 창밖에 고정됐다. 방심한 틈을 타 옛날 일들이 머릿속에 번졌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음악을 빠른 곡으로 바꿔 생각을 흩쳤다.

  창밖으로 삭막한 기둥이 연달아 지나갔다.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리 확인한 노선에 없던 지하철역 이름이 스쳤다.

  오금역

  지하철을 잘못 탔다.

  지하철은 마천 방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또 그때와 똑같은 실수를 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상일동 방면이었다. 머릿속에 아까 본 플랫폼의 안내판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노선도를 다시 확인해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고덕역을 가기 위해 5호선을 떠올린 순간 이미 홀려버린 것인가 싶었다.

  나는 다다음 역인 개롱역에서 내려 곧장 반대편 플랫폼으로 갔다. 빨리 지하철이 오길 바랐지만 생각보다 배차 간격이 길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머릿속에 가득 차 버린 그때의 생각을 이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아쉬움 때문인지 세상이 고요해졌다.

  사실 그때 지하철을 잘못 탔다고 말하고 나서 우리는 서로 다퉜다. 정확히 말하면, 전날 준비물을 정하면서부터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막상 만나서 서로를 보자 금세 마음이 풀렸다. 물론 앙금을 완전한 해소를 위해는 약간의 대화가 필요했지만, 그 역시 순조로웠다.

  우리는 그날 서울대공원을 잘 다녀왔다. 하지만 머지않아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드디어 지하철이 오고, 나는 강동역에서 내려서 다시 상일동 방면으로 열차를 갈아탔다. 그동안, 머릿속에 가득했던 아쉬움은 다음 이에 대한 각오로 바뀌었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생각할지. 어디를 가고, 어떤 것을 먹고, 무엇을 할지. 그러다 결국 허무해졌다. 지금의 새삼스러운 다짐이 그때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아쉬웠다. 전날 서로 다툰 것부터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까지. 그날을 떠올리자 아쉬운 것들이 가득했다. 내가 해야 했던 것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고덕역에 도착했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날씨는 딱 적당히 화창했고 바람도 약하게 스쳤다. 평소 같으면 시간이 아까워서 분하기도 했을 텐데, 나는 여정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복기하느라 바빴다.

   나는 다시는 절대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바리오 V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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