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절 08
대학 시절, 선배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잤던 낮잠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넓지 않은 그 원룸에는 슈퍼 싱글 정도 되는 침대가 있었다. 가자마자 그곳에 누었더니 희한하게 참 편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오랜 긴장까지 얼음 녹듯 사라졌다. 나는 그 느낌을 얼마 만끽하지도 못하고 금세 잠이 들어버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잠에서 깼을 때, 몸이 너무나도 개운했다. 그동안 성가셨던 피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난 그때의 편안함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이곳저곳 벌러덩 누워봤지만 한 번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편했던 곳 역시 침대 위였다. 병원 침대, 병상.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3~4번 척추 천자 시술을 받아야 했다. 몸을 둥글게 말아 태아자세로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 있으면 의사는 돋아난 내 척추뼈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다가 적당한 곳을 찾으면 차가운 솜으로 소독을 했다. 의사는 그곳에 천자를 찔러 척수를 받아냈다. 원하는 양이 채워지면 다시 그것을 통해 항암제를 주사했다.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척수 천자 시술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연필심만한 바늘이 피부를 뚫고 척추뼈 사이로 들어가다 신경을 건드리면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마취를 해서 통증을 없앨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그것은 시술에서 아주 중요한 모니터였다. 고통을 느낄 때 낼 수밖에 없는 비명을 통해 의사는 바늘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늘은 그 소리에 따라서 멈추고 요리조리 방향을 바꿨다. 능숙한 의사가 시술을 하면 한 번에 성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바늘을 아예 뽑았다 다시 찌른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그저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이 두려웠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다른 것들이 걱정됐다. 이 시술에서 정말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척추 천자가 끝나면 베개를 베지 않고 침대에 똑바로 6시간 정도 누워 있어야 했다. 그것도 지혈을 위해 등에 주먹만 한 딱딱한 뭉치를 대고서 말이다. 그래야 약물이 척수에 골고루 퍼질 수 있었다. 의사는 만약 그 시간 안에 머리를 살짝이라도 들면 부작용으로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이 올 수 있다고 매번 경고했다.
나는 시술 전에 밥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누워있는 동안 소변이라도 급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작하기 직전에는 꼭 화장실에 다녀왔다. 끝나고 나서 자려고 전날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모두 소용이 없었다. 침대에 꼼짝 않고 똑바로 누워 있으면 어찌나 갑갑하고 불편하던지 홑껍데기 환자복을 입고서도 식은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였다. 독한 약 때문에 속은 매스꺼웠고, 좀이 쑤셔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많은 양의 수액이 주사됐기 때문에 어김없이 소변이 마려웠다. 나는 지루함을 폭 덮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선 어떻게 해도 너무나 괴로웠다.
나는 그때의 불편함 역시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낙상 주의 푯말이 붙어있는 좁은 침대에 누워 있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답답했던, 약 기운에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웠던, 부작용이 두려워 꼼짝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고통을 정말 다시는 느끼 싶지 않다. 자유롭지 않다면 아무리 과학적인 침대라도 나는 싫다.
바리오 V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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