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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Jan 06. 2024

'첫째만 잘 기르자'고 했는데, 갑자기 둘째가 찾아왔다

기쁘기보다는 두려움이 엄습한 둘째 소식

작년 10월 뱃 속에 새 생명이 들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였다. 


추석 즈음부터 한 끼만 먹어도 유독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시작되었다. 


'느끼한 걸 많이 먹어서 그러나? 요즘 너무 과식을 했나?' 싶던 차에 배우자와 나는 "이거 정말 임신인 거 아냐? 임신테스트기라도 해보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리가 끊겨서가 아니라 속이 더부룩하니 임신테스트기를 해 보자는 부부라니)


다이소에서 원포 임신테스트기를 사서(테스트기 3개 3천원! 이게 이득입니다 여러분!) 소변에 적셔보니 이럴수가. 


세상 선명하게 드러나는 빨간색 두 줄이 나왔다. 완전 극 임신 초반에는 두 줄이 보일랑말랑인데 내 껀 완전 선명한 두 줄. 이건 맘카페에 '임신인지 아닌지 한 번 봐주세요'라는 글을 올릴 필요도 없이 임신이었다. 


임신테스기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막 환호하고 기뻤던 첫 애와 달리 '아, 이제 이건 진짜 현실이 되었구나'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합계출산율 0.7의 시대에서 아이를 둘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기에 '그래, 이 시대에 둘째는 사치야. 힘들 게 살지 말고 OO이(첫째)만 잘 기르자'라며 1년 넘게 집에 이고 지고 있던 아이 물건들을 하나씩 당근과 주변인들에게 처분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예고없이 둘째가 찾아오다니. 이제 나의 인생은 애 하나를 기르는 것과는 다르게 차원이 달라질 것이었다. 애 하나 키우는 건 '그래, 이 정도는 우리부부가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여유가 있었는데 앞으로 둘을 키운다고 하니 인생의 난이도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가벼운 돌덩이를 메고 다니다가 갑자기 바위를 짊어지게 된 기분. 


아는 지인 동생이 "언니, 제 주변보면 다 둘째는 생각 없이, 큰 계획 없이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생각 없이, 계획 없이 피임 안 했던 결과가 둘째라니. 


그날 이후로 바로 병원 예약을 잡고 첫째 때 출산했던 담당선생님에게 가서 진료를 받았다. 수많은 산모들을 접하는 의사 선생님은 날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 질 초음파를 본 이후의 답변은 이랬다. 


"어유, 뭐 이미 아기가 다 자라서 오셨네요. 7주입니다. 이건 뭐 병원 자주 올 필요도 없어요. 4주 후에 기형아 검사하러 오시면 되겠습니다." 


임신을 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난임병원에 다녔던 첫째와 너무 비교되는 임신이었다. 30대 중반에 결혼을 했기에 생리학적으로 어쨌든 만 35세 이상인 '난임'이었고, 조금이라도 아이 가지는 시기를 당기기 위해 결혼식하고 난 다음 달부터 난임병원을 방문했던 나였다.


시험관 시술도 아닌 난포주사를 맞는 아주 초기단계의 수준이었지만 난포주사를 며칠 간격으로 맞고, 병원을 주 단위로 방문하면서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좌절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6개월간 병원을 다닌 끝에 얻은 아이가 첫 애였는데 둘째는 아무 노력도 - 배란일을 맞추지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융단폭격(임신을 위해 특정 기간에 매일매일 성관계를 하라는 뜻)'을 하지도 않았는데 - 없이 갑자기 찾아오니 약간 허무한 기분도 있었다.


병원 진료실을 나오니 복도에 빨간 우체통이 보였다. 편지엽서를 쓰면 아기 출산예정일에 맞춰 보내준다는 서비스였다. '첫애 때는 이런 것도 없었는데'라고 생각하며 둘째에게 편지를 썼다. 


미래의 둘째에게 하고 싶어지는 말을 꾹꾹 써 보는데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병원에서 집에 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울 때는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울었는데 내 인생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라는 사실에 겁이 났던 것 같다. 간절히 원했던 첫 애와 달리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무 준비도 해주지 못하고 7주차에서야 알게된 뱃 속의 둘째에게 드는 미안한 기분, 앞으로 아이 둘을 어엿한 성인으로 잘 길러낼 수 있을까에 대한 온갖 감정의 복합체였다. 


둘째는 생각 없이 낳는다더니.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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