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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Feb 26. 2024

애(자식) 때문에 엮인 관계는 피곤하다

둘을 낳아야 하는 이유

남편과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가 있다.


'형-동생'하는 사이인데(우리가 형, 동료쪽이 동생) 아이들 연령대가 비슷해서 돌 되기 전부터 왕래를 하기 시작했다.


직장동료의 부인은 나랑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20대로,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공통점이 애 키우는 거 말고는 없지만 남편과 회사 동료와의 관계도 있고, 또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키우기에 오며가며 여자들끼리 따로 만났다.


막 엄청나게 말이 잘 통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엄청 즐거운 상대도 아니지만 남편과 직장동료가 친하고, 아이들끼리 같이 놀면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보기 좋아서 만남을 이어온 것이다. 특히 딸이 두 돌 가까이 되면서 상대쪽 아이를 보고싶다며 찾는 것도 만남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역시나 애 때문에 엮인 관계여서일까.


상대방의 잦은 연락두절(그쪽에서 채팅이 와서 답장을 보내면, 내 채팅을 읽지도 않고 '안읽씹' 상태로 사나흘 후에 답장을 보냄)과 일방적인 대화스타일(상대방의 대화를 들어주기보다 본인 하고싶은 말만 하는 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안 맞는 면이 보일 때마다 '이 친구는 어려서 그러겠지. 내가 20대를 모르는 거겠지'라고 넘겼던 부분들이 점차 쌓였다.


ex. 가령 우리집에 와서 본인이 요리를 할 때가 있는데, 은연 중에 나를 굉장히 요리 못하는 하수 취급을 한다거나 or 본인이 굉장히 살림꾼인 모양새를 취한다거나.


ex. 남편 직장동료는 나에게 "형수님"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내 남편에게 "OO씨"라고 부른다거나 / 그녀는 남편과도 최소 7~8살 차이가 난다.


그러다가 최근에 일이 터졌다.


나는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나는 경기도에서 강남으로 출근을 한다) 남편이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고 있는데 그 상황을 아는 그녀가 밤중에 이런 카톡을 보내온 것이다.



1년 전 일을 언급하며 애를 봐달라고 하는 남편직장 동료의 부인



내 상식 선에서는 '언니, 혹시 퇴근하면 몇 시야? 퇴근하고 우리 애 좀 잠깐 봐줄 수 있을까?'라고 나의 상황을 묻는 게 먼저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 부부의 상황은 일절 물어보지 않은 채, 본인 남편은 빠질 수 없는 회식이고 본인은 어린이집 오티를 가야하니 아이를 맡아줄 수 있냐는 일방적인 부탁을 "무리하지 말공~~~ 부담 안 가져도 되공~~"라는 말과 함께 물어왔다.


아무리 자기 애를 부탁한 시간이 1시간이로서니 임산부인 직장맘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하는 것, 강남-경기도로 왕복 세 시간 이상 출퇴근을 하는 나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무엇보다 내 퇴근 시간은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곤란하다'는 듯 부탁하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저날은 내 남편도 회식인 날이었다. 남편들은 같은 직장이기에 주로 '목요일'에 회식을 한다)


그래서 나는 좀 황당하면서도 불쾌한 마음이었지만 나름 정제해서 답장을 보냈다.


"나 그날 퇴근이 7시야;; 이건 남편들끼리 조율해야 할 문제 같아"


그러자 그녀는 (여자들만 알 수 있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언니가 전에 언니네 애도 나한테 봐달라고 해서 그거 생각나서 부탁한 거야. 나는 부담 가지지 말라 했고. 알았어 오리엔테이션은 내가 알아서 할게~ 잘 자~"라며 답장을 띡 보내왔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답장인가. 그녀는 적어도 1년 전 일(우리집에서 같이 서로의 애를 보던 중에, 내가 아파트 동대표 회의를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해서 잠시 애를 부탁했던 일)을 들먹이며 생색을 냈다.


'빙썅'을 제대로 먹인 카톡을 받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부글부글 하다가 남편과 얘기를 나눈 끝에 결국 답장을 안 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직 어려서 그래~ 이 사람도 말을 참 이상하게 하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진심이랑 다르게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녀를 좋게 좋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흘 후 그녀는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30년 이상을 살면서 이런 장문의, 그것도 이렇게 무례한 카톡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 카톡이 끝이 아니다. 거의 소설 한 페이지 분량을 써서 보낸 남편 동료(동생)의 부인



첫 문장부터 "나는 언니 카톡과 행동으로 기분이 나쁜 상태야"라고 시작한 카톡은 요약하자면 '너가 네 애 부탁해달라고 해서 나는 개의치않고 봐줬는데 너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네? 나는 너에게 배려와 존중을 했는데 너는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네'라는 내용이었다.


사흘 전에 내가 "나 퇴근이 7시야;;"라고 답장 보낸 것이 매우 기분이 나쁘다며 내가 기분 나쁠 때 ; 기호를 쓴다며(난 그녀에게 따옴표(;)를 ㅋㅋ; 할 때 말고는 쓴 적이 없다) 사실도 아닌 일을 사실인 것마냥 적어놨다.


이 외에도 온갖 최근의 일들을 다 서운하고 예의없다는 듯이 장문의 비난을 토해냈다. 러면서도 본인은 항상 베풀 때 되돌려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베풀고,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며 본인의 미덕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써놨다.(그리고 바로 연달아서는 나는 이기적이고, 본인 중심으로만 행동하는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맹비난)


제3자가 이 카톡을 보면 내가 그녀를 여태껏 이용해먹고 내 이득을 취해온 것마냥 나를 묘사하고, 본인은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애들을 생각해서 나한테 나눠주고 베푼 것처럼 카톡을 보내온 것이었다.


특히나 마치 지난 1년 동안 우리가족과 내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배려해서 한 행동과 베풂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우리는 키즈워터풀이나 호텔 조식, 무인키즈카페 대여 등 아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이벤트들은 그들 가족을 '굳이' 초청해서 다같이 함께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정말 가관 중의 가관. "남편(물론 이 때도 내 남편을 OO씨라고 표현하는 것은 놓지 않았다)과 함께 이 카톡을 보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겠어"라며 남편과 함께 나의 지난 일을 반성하라는 듯이 끝문장을 맺었다.


우리 부부에게 훈계까지 잊지 않은 그녀



남편에게 이 카톡과 지난 날의 카톡을 모두 보여주자 돌아온 남편의 말.


"얘는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보고 같이 보래? 차단해"



앞으로 정말, 절대로, 애 때문에 엮인 관계는 둘이서 따로 만나지 않으련다.


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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