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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Feb 12. 2024

임산부석에 앉아있는데 다른 임산부가 눈에 밟힌다.

2021년에도 2024년에도 임산부석은 달라진 게 없다

작년 가을, 둘째를 임신했다.


첫 애를 임신한 게 2021년이니 세 살 터울의 둘째를 가지게 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임신을 한 채로 복직을 하게 되어 또다시 나는 출퇴근 길의 임산부가 되었다.


2021년에도 지하철 임산부석에 관한 토로를 안한 바는 아니지만, 2024년이 되어도 역시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지하철을 타는 곳이 어마어마한 인파가 서로 환승하는 역인지라, 타는 사람도 많지만 내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었다.


퇴근 첫 날에는 지하철 직원 분이 나와서 인파를 제지하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기도 했지만 복직 1주일차인 지금, 아직까지 백전백승으로 임산부배려석에 못 앉은 적이 없다.


매번 겁을 먹으면서 지하철을 탔는데 신기하게도 임산부석이 항상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며칠에 걸친 지하철 탑승 시도 결과, 이게 단순히 몇 년만에 높아진 시민의식 때문은 아니란 결론을 얻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기다리는 플랫폼은 두 지하철 노선이 환승하는 가장 빠른 환승칸이다. 방금 전까지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탑승하는 역에서는 무조건 환승을 위해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어느 시간대에 타건 높은 확률로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을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임산부석에 앉는 건 좋은데, 퇴근 인파에 치여 서서 가는 다른 임산부를 바로 눈 앞에서 볼 때다.


자비없기로 유명한 퇴근길 지하철.


나는 임산부석에 다행히 앉았지만 이내 다른 임산부의 핑크뱃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앉아서 가지만 저 임산부는 앉아서 가지 못하는 상황.


'어서 저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다른 자리가 났으면'하고 마음 속으로 바래보지만 현실은 예상대로 잔인하다. 그 임산부는 퇴근 속 인파에 치여 자리를 앉지 못했고 30분이 지나고 지하철 인파가 어느 정도 빠진 뒤에야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퇴근길. 모두가 지친 몸을 이끌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인들 자리를 양보하고 싶겠지만은 임산부석에 앉아 서서가는 다른 임산부를 보는 것만큼 불편한 게 없다.


왜냐면 나 또한 첫 애를 임신했을 때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은 다른 임산부를 원망해본 적이 있으니까.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내가 임산부석에 앉을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저 사람은 대체 언제 내린담'하고 임산부석을 레이저 쏘듯 쳐다본 적이 있다.


2021년 합계출산율이 0.8일 때도 역대 최저기록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더 낮아진 0.7(2022년)이다.


해마다 0.1씩 낮아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가운데 여전히 임산부석을 놓고 임산부끼리 경쟁(?)해야 하는 2024년을 마주했다.


역시나 해결책은 애를 안 낳는 것뿐인가.


임산부(나)의 '조금 더' (마음)편한 지하철 탑승을 위해 다음 달에는 유연근무제 시간대를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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