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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내리면 Jan 13. 2020

2. 책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보통 출근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구매한다. 나름대로 저렴한 가격에 진한 원두로 아침을 깨워 줄 커피는 내가 가진 소비 중 가장 사치스러운 소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기꺼이 나는 이 가격을 지불한다. 오전 업무를 정신없이 처리한 후, 동료들과 먹는 점심 식사. 타 부서, 타 브랜드 친구 혹은 선배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와 고민들을 나누는 것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때로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금요일에는 저녁에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하기도 한다. 내 생활 패턴은 꽤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패턴에서 소비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소비는 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책'은 꽤나 비중이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책을 읽는 즐거움도 크겠지만, 사는 즐거움도 굉장히 크니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으로써 '책 구입'에 얼마 정도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라고 여길까? 모두가 합의할 만한 책 가격은 얼마일까?


내 첫 직장이었던 오픈 마켓에는 '오늘만 특가'라는 코너가 있었다. 대부분 구입해봐서 알겠지만, '오늘만 특가'는 매일매일 특정한 제품을 파격적으로 할인해서 판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13일(월) 하루만 <섬유 유연제> 8,800원, <어린 왕자> 3,900원 판매와 같은 것이다. 다른 제품들은 잘 모르겠지만 책의 경우에는 대부분은 역마진으로 판매한다.


왜 손해를 보면서 파는 거예요?
이익이 많이 나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나는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인을 해서 판매하는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나의 질문에 선배는 '이러한 특가로 플랫폼에 유입되어 다른 제품들도 함께 구입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만 판매하는 플랫폼은 아니다 보니 '책' 또한 다양한 제품군과 경쟁해서 판매를 올릴 수 있다고 판단되어야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의 특수성이 고려되기는 힘들었다. 기타 제품들과 같이 가격 경쟁을 통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것이 당시 도서 담당자들의 애환이었다. 이후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근무할 때에도 이러한 특가가 존재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당시에 '책'은 누구에게도 그 특수성이 고려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루에도 수 명의 출판사 영업자들이 찾아다. 지금도 매일 서점 엠디와 미팅하기 위해 출판사 영업자들은 파주로 여의도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새로운 책을 소개하기 위해, 혹은 할인이 가능한 책을 제안하기 위해.


"팔만한 책 있나요?"


지금 생각하니 '팔만한 책'이라는 말에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출판사 영업자는 적당한 인지도와 적당한 판매량을 보이던 책을 내민다. (혹은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만들었지만 독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어떤 책을)


이 책을 '오늘만 특가'에 노출할 수 있다면 공급율을 35%에 줄 수 있습니다.



정가 13,000원짜리 책을 4,550원에 공급하겠다는 의미이다. (4,550원의 가격에 작가 인세와 제작비, 출판사 운영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있었을까?) 그렇게 공급받은 책은 보특가로 3,900원에 판매되었다. 한 권당 650원의 손해를 보면서 판매하는 것이다. 3,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보고 유입된 독자가 다른 책도 함께 살펴보기를 바라면서. (생각해보니 3,900원에 무료 배송이었다. 이런.)


사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이런 마케팅의 일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선배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배워가며, 그날그날 책 판매량이 많고 매출이 오르면 그저 기뻤고, 상사에게 칭찬받으면 우쭐했다. 그렇게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다양한 책들이 3,900원에 팔려 나갔다. 팔릴수록 손해를 보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 친구>도. (휴=33)


그 날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 친구>가 '오늘만 특가' 자리에  핑크빛 표지를 뽐내고 모두의 기대감과 함께 판매량이 실시간으로 한 권, 두 권 올라갈 때. 뿌듯함과 묘한 설렘으로 지켜보면서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한 줄, 한 줄 밑줄 그어가며 감동했던 이 책이 3,900원에 팔리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나는 학창 시절 이 책을 품에 안고 학교로 향했던 길들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함께 이 작품에 대해 합병했던 시간들도, 함께 좋았던 문장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순간들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스스로 물었던 잠시의 질문은 뒤로 하고, 그 날의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후 오픈 마켓과 온라인 서점을 거쳐 지금의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도서 업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도서 업계의 여러 문제들도, 또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문득문득 고민해본다. 무엇이 옳았을까? 지금은 바람직한가?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책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출판사에서 새로 출간되는 책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보통은 초판 2, 3천 부는 판매되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선정한다. 그 말은 재판을 해야 자그마한 수익이라도 발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판을 찍는 책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나도 도서 업계 근로자로서 적어도 '책 값만큼은 아까워한 적 없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책 구매를 줄이고,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의 가격을 보며 결제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평범한 독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도서의 특수성을 배제한 지나친 할인 경쟁이 도서 시장을 무너뜨렸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전히 공부가 필요하다.


'책'이 지닌 가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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