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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Apr 01. 2024

천천히 이루어진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패배자가 아니야

페이스북에 3년전 사진이 떴다. '살아서 나가자' 메모한 사진. 나는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긴 시간을 살려고 애썼다. 퇴직까지 2개월의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 돌아보니 나는 여기서 버텨보려고 여러가지를 했다. 2년 넘게 화상영어 수업도 듣고, 글쓰기 수업, 운동 수업을 들으며 생활에 활력 또는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방향이 틀렸다.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가기 위해서 애썼어야한다. 그만두고 싶어하면서도 여기서 유지하기 위한 힘을 써온거다. 어리석었다.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현실이라는 테두리에 가두고 무시해온거다. 그래서 병이 난거다.


요즘은 다시 친구들도 만나고 예전의 나처럼 좋은 에너지를 만들려 하고 있다. 버겁지 않다. 버겁지 않은 정도로 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당장 마음이 좋아질 줄 알았다. 아니다. 아주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뭐든  시간이 걸리는 나는 조금씩 마음이 풀리고 있다. 괴로워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나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한심해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것 만으로도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심해했던 사람들과는 연을 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았을 것 같다.) 어쨌든 이제 더 이상 죽을 것 같은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패배자가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좋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지난 몇년만큼 죽고싶어서 허우적거리진 않을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람이 살면서 죽고싶을만큼 싫은 걸 이겨내고 버텨서 성취해야만 하는 건 없다. 남편은 내가 혼자 있을 때 뛰어내리기라도 할까봐 입원을 시켜야하나 고민도 했다. 그런 삶은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사람은 각자의 그릇과 운으로 살아간다. 각자의 인생이 있다. 나에게는 나만의 타이밍과 운, 그릇이 있다. 이 안에서 잘 살아가면 된다.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사람이라 누구는 본부장이고 누구는 센터장이고 누구는 뭐더라 하는 마음이 1도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내 삶을 살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알콩달콩 살아가면 그것만으로 가치있고 예쁜 삶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밤 묵주기도를 한지 1달 반이 지났다. 매일 컨디션 기록을 한지 9개월, 감사와 칭찬 일기를 쓴지 7개월, 상담과 투약을 재개한지 9개월. 그렇게 천천히 하루하루 달라져왔다. 앞으로도 한 걸음씩 좋아질거라 생각한다. 천천히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내 가정을 잘 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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